이곳은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 茶山 > 정약용< 丁若鏞 > 선생< 先生 >의 묘이다.
선생은 정조 13년(1789) 문과< 文科 >에 급제한 후 홍문관 수찬< 修撰 > 등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참의를 지내면서 규장각< 奎章閣 >의 편찬 사업에 참여하여 많은 업적을 남기었다. 순조 원년(1801) 신유박해< 辛酉迫害 > 때 유배된 후 다시 황사영< 黃嗣永 > 백서사건< 帛書事件 >으로 강진으로 옮겨 순조 18년(1818)까지 18년 동안 귀양살이를 했다.
선생은 귀양살이 중에도 학문연구에 전념하였고, 고향인 양주에 돌아와서도 여생을 오직 저술에 몰두하여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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