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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야류 - 익살과 재담이 한마당 어우러지는 선인들의 정신적 문화유산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동래구 온천1동 산13-3번지

수영야류에서 본받은 탈놀음으로 약12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동래구 온천동 옛 놀이터를 근거로 전승되고 있다.
길놀이와 군무 등의 전편과 문둥이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할미·영감과장의 4과장의 후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양반계급에 대한 반항과 풍자가 탈놀이의 주제로 되어 있다. 예능보유 종목은 원양반, 말뚝이, 할미, 가면제작, 악사가 있으며, 가면제작기능보유자로 천재동옹이 있다.

한국민속가면극의 명칭은 지방에 따라 다르게 불리는데,
경남은 오광대,
중부지방은 산대놀이,
황해도 지방에서는 탈춤,
부산에서는 들놀음이라고 한다.

동래야류는 오광대와 마찬가지로 해서(海西)의 탈춤, 중부지역의 산대놀이와 함께 한국 가면극의 3개 주류에 드는 가면극의 영남형으로 보고 있다. 동래야류는 동래 들놀음으로 불린다. 산놀음을 산유(山遊), 냇가놀음을 천변유(川邊遊)로 부르듯 야류는 들놀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이와같이 동래 들놀음을 한자화한 것이 동래야류로서 외지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야유라 부르지만 동래에서는 야류라고 부르고 있다.

들놀음은 정월 보름날 보름달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을 빌고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면서 농토를 상징하는 들에서 펼치는 놀이이다. 동래야류의 정확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증언에 의하면 약 120여년의 역사를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일제의 민족문화탄압과 한국 전쟁으로 인해 줄다리기와 함께 중단되었다가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학자들과 지방유지들의 노력으로 조사·정리하여 재현되고, 1967년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속극의 과장은 독립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동래야류는 문둥이·양반·영노과장으로 연속되어 있다. 또한 할미·영감과장에서 할미가 죽으면 무당5인이 나와 망인을 극락으로 천도함은 가산오광대와 같이 특이한 구상이다. 게다가 운구하며 상여소리까지 삽입하고 있다. 굿거리장단과 덧배기춤은 타지방보다 뛰어난 민속가면극이다.

정월 대보름 저녁 온 동네가 들썩거릴 정도로 마을사람 모두가 구경꾼이요 연희자(演戱者)로 참여하는 대동놀음으로 놀아졌던 동래야류는 지신 밟기로 시작된 탈놀음에 앞선 길놀이가 상당히 규모가 컸었으나, 이제는 길놀이는 거의 없어져가고 4개의 과장만이 하나의 공연으로서 전승되어 문화재지정을 받았다.

동래야류의 구성은 길놀이와 군무등의 전편과 문둥이과장, 양반과장, 영노과장, 할미·영감과장 등 탈놀음 4과장의 후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래들놀음은 대동놀이인 동래줄다리기와 밀착되어 있을 뿐 아니라, 동민을 비롯한 지역민의 자발적인 참여로 단결하고 애향심을 함양하는 사회성이 강한 집단 연희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예능보유 종목은 원양반, 말뚝이, 할미, 가면제작, 악사가 있으며, 동래 야류보존회가 부산민속예술보존협회의 후원을 받으면서 전승에 힘쓰고 있다.

80년대에 들어와 길놀이의 지신밟기를 재현하여 부산의 지방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으며 동래야류의 앞놀이 복원에 힘쓰는 중이다. 연희시기는 앞서 말한대로 정월 대보름이었으며 준비과정은 야류 탈놀음 계원들이 음력 정월 초사흗날부터 동네 각 집을 돌며 "지신밟기"를 하여 비용을 마련 한다. 음력 정월보름날 동부, 서부간의 줄다리기가 끝난 이튿날 밤에 동래 중앙통 광장 패문리에 무대를 가설하여 놓고 놀았다. 무대는 목재를 사용해 관중보다 약간 높게 만들고 관중은 삼면에서 볼 수 있게 되어 있으며, 악사석은 무대를 향하여 왼쪽에 있다. 이 놀음은 밤에 연희되므로 연희 때는 무대 좌우 적당한 곳에 불을 밝히고 놀음판을 좀더 화려하게 하기 위하여 제등을 공중에 달았다.



[대중교통]
지하철 : 온천장역에서 하차 후 '부산민속보존협회'를 찾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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