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이 비는 현재 선암사 무우전 뒷 편인 북암에 오르는 길목에 있다. 높직한 귀부위에 비신을 세우고 정상에 이수를 얹은 형태이다. 먼저 귀부를 보면 귀두는 용두화되었으나 여의주를 물지 않고 있으며 목이 매우 짧아 웅크리는 모습이다. 귀갑은 육각문이 음각으로 선명하게 시문되었고 주록에 2줄의 양각 띠를 돌려 마무리하였다. 귀감상면에 평범한 방형의 비좌를 앉히고 그 위로 비신 을 안치하였는데 비면 전면의 상단으로「조계산선암사중수비」라 전서로 제액을 하고 비제는「승평부조계산선암사중수비면병서」 라 하였다 비문은 채팽윤이 찬하고 이진휴가 썼으며 비선립은「 숭정기원후팔십정해림종월일립」이라 명문되어 조선 숙종 33년 (1707)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수는 하단에 앙연을 하고 그 상면에 두 마리의 용이 반결하여 꿈틀거리고 있는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이 비는 정유재란에 의하여 선암사가 소실된 것을 약체대사의 노력으로 선암사가 복원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한 중수비로 조선조의 석비로서는 수작에 속한다 할 것이다.
이 비는 현재 선암사 무우전 뒷 편인 북암에 오르는 길목에 있다. 높직한 귀부위에 비신을 세우고 정상에 이수를 얹은 형태이다. 먼저 귀부를 보면 귀두는 용두화되었으나 여의주를 물지 않고 있으며 목이 매우 짧아 웅크리는 모습이다. 귀갑은 육각문이 음각으로 선명하게 시문되었고 주록에 2줄의 양각 띠를 돌려 마무리하였다. 귀감상면에 평범한 방형의 비좌를 앉히고 그 위로 비신 을 안치하였는데 비면 전면의 상단으로「조계산선암사중수비」라 전서로 제액을 하고 비제는「승평부조계산선암사중수비면병서」 라 하였다 비문은 채팽윤이 찬하고 이진휴가 썼으며 비선립은「 숭정기원후팔십정해림종월일립」이라 명문되어 조선 숙종 33년 (1707)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수는 하단에 앙연을 하고 그 상면에 두 마리의 용이 반결하여 꿈틀거리고 있는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이 비는 정유재란에 의하여 선암사가 소실된 것을 약체대사의 노력으로 선암사가 복원한 후 그 내용을 기록한 중수비로 조선조의 석비로서는 수작에 속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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