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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대장경판 -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고도 함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 대장경판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문에 고려대장경판이라 하며, 또한 판수가 8만여판에 이르고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법문을 수록하였다하여 팔만대장경판이라고도 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현종 때의 초조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긴 대장경으로 재조대장경판이라고 하며,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 대장경판이라 불리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나장에 보관되어 있다. 대장경판의 수는 일제 때 조사한 81,258장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여기에는 대장경판이 아닌 조선조 때 판각된 것도 포함된 통계이다.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70㎝ 내외이고 두께는 2.6㎝ 내지 4㎝이다. 무게는 3㎏ 내지 4㎏이다.

대장경의 판각을 위해서는 국가에서 대장도감이란 임시기구를 설치하여 총괄하고 실제적인 판각은 경상남도 남해에 설치한 분사대장도감에서 담당하였다. 이러한 것은 경판의 간기와 경판에 새겨져 있는 가수를 조사하여 얻어낸 결론이다. 대장경판의 권말에는 "을사세 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등으로 간기가 기록되어 있고 각 경판의 권수제나 권미제 아래의 광곽밖에 각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대장경판은 간행기록을 조사해 보면 고려 고종 24년(1237)부터 35년(1248) 까지 12년동안 새겼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 16년이 걸린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은 준비기간을 합산한 것이며, 고려대장경각판각 사업은 초조대장경이 불타 버린 이듬해인 고종 20년(1233) 경에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새긴 대장경판은 모두 1,496종 6,56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의 특징은 무엇보다 이 사업을 주관했던 당시 개태사 승총인 수기대사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비교하여 오류를 바로 잡은데에 있다. 이때 수정한 내용은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에 수록되어 있다.

이 대장경판은 강화도 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선원사를 거쳐 태조 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까지 보관되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판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일 뿐 아니라 현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장경판이다. 또 한 이 대장경은 대장경 간행 역사에 있어 내용이 가장 정확하고 완벽한 대장경판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1614년 이 대장경을 바탕으로하여 대장경 <종존판>을 새기다가 중도에 포기한 일이 있고 그 후 신연활자로 「대일본 교정숙축쇄판대장경;1880∼1885」,「대일본속장경:1902∼1912」,「대정신수대장경; 1924∼1934」의 바탕이 되었으며 중국에서 「불교대장경;1979」과 현재 간행하고 있는 「불광재장경;1983∼현재」의 바탕을 삼고 있을 정도로 그 내용이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대장경판은 수천만개의 글자가 하나같이 그 새림이 고르고 정밀한 서각 예술품으로 우리 민족이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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