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군 서천읍 남산리 산22-1외 4필
이 성은 편축식으로 되어 있으며, 가로 세로 30∼40㎝ 크기의 자연석을 방형, 장방형으로 치석하여 쌓은 것을 현재 잔존하는 남.북벽의 중간 지점에서 3∼4단의 석축렬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벽의 붕괴지점에서는 축성시 밑에 깔린 삼국기 토기편과 기와편을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본 성쌓기는 관축에 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성벽의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이미 이곳이 주거지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성을 이 중간성으로 보고 상부는 토성이며, 하부는 석축산성이라고 하며, 삼국시대의 와편 및 토기편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하며, 서해안의 움직임 및 금강입구를 감사할 수 있는 요충지로 평가하고 있다. 이 남산성은 우리고장의 남산놀이가 전해오고 있으며, 특히 서쪽능선의 정상부에는 운은산 봉수대가 있었고, 남사면 하단에는 봉남리 석탑이 잔존하며, 영취산과 운은산 중간지점에 성황당이 있어 남산성과 그 주변에 대한 조사연구가 기대된다.
이 성은 편축식으로 되어 있으며, 가로 세로 30∼40㎝ 크기의 자연석을 방형, 장방형으로 치석하여 쌓은 것을 현재 잔존하는 남.북벽의 중간 지점에서 3∼4단의 석축렬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벽의 붕괴지점에서는 축성시 밑에 깔린 삼국기 토기편과 기와편을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본 성쌓기는 관축에 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성벽의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도 이미 이곳이 주거지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산성을 이 중간성으로 보고 상부는 토성이며, 하부는 석축산성이라고 하며, 삼국시대의 와편 및 토기편을 수습할 수 있었다고 하며, 서해안의 움직임 및 금강입구를 감사할 수 있는 요충지로 평가하고 있다. 이 남산성은 우리고장의 남산놀이가 전해오고 있으며, 특히 서쪽능선의 정상부에는 운은산 봉수대가 있었고, 남사면 하단에는 봉남리 석탑이 잔존하며, 영취산과 운은산 중간지점에 성황당이 있어 남산성과 그 주변에 대한 조사연구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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