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산성은 산의 형태가 거북이 모양을 닮은 구성공원에 있다. 성곽은 무너져 버렸지만 돌을 쌓은 흔적이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구성산성은 성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안에 우물과 전답이 있어 유사시에 식량 걱정을 덜 수 있으며 하천이 성 아래로 흘러 외적의 침입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때에는 성 자체가 무덤이라 할만큼 격전이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축성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상도지리지'에 조선 태조 2년인 1393년에 시축(始築)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축조양식과 정황으로 봐서는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이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역이어서 방어를 위한 성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도 홍건적과 왜군의 침입에 대비해 성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구성공원에는 충혼탑과 '이성가장군 송덕비' 등이 들어서 있어 구성산성의 흔적과 함께 역사유적지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구성산성은 성이 들어서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성안에 우물과 전답이 있어 유사시에 식량 걱정을 덜 수 있으며 하천이 성 아래로 흘러 외적의 침입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임진왜란때에는 성 자체가 무덤이라 할만큼 격전이 벌어졌다고 전해진다.
축성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상도지리지'에 조선 태조 2년인 1393년에 시축(始築)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축조양식과 정황으로 봐서는 훨씬 이전에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이 지역이 신라와 고구려의 접경지역이어서 방어를 위한 성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려시대에도 홍건적과 왜군의 침입에 대비해 성을 만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구성공원에는 충혼탑과 '이성가장군 송덕비' 등이 들어서 있어 구성산성의 흔적과 함께 역사유적지로서의 면모가 돋보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