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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복기념관 :: 후손들에게는 분단 민족사를 입증하는 역사적 유물

by 넥스루비 2007. 8. 22.
강원 평창군 용평면 노동리 327-1

강원도 평창에 있는 이승복 기념관에서는 이곳을 청소년들에게 『무장 공비』의 잔학상을 일깨워주는 통일 안보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외국인들에게는 반공의 보루로서 한국의 현실을 재인식시키며, 후손들에게는 분단 민족사를 입증하는 역사적 유물로 남기고자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설립동기와 배경을 살펴보면 1950년 6월 25일 발생하였던 우리 민족의 최대 전쟁인 6, 25 한국 전쟁이 휴전으로 마감된 이후에도 북한에서는 한반도의 적화 통일 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호시 탐탐 재침의 기회를 엿보며 무장공비를 남파시켜 대한 민국의 발전을 저지시키고자 다각적인 시도를 해왔다.
그러던 중 1968년 10월 30일과 11월 2일, 3일 울진 · 삼척지구로 15명을 1개조로 편성한 8개조 120명의 무장공비를 대거 침투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 해상으로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우리의 군 · 경 · 예비군에 쫓기여 북으로 도주하던 중 그들의 잔당 5명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노동리(현재는 용평면 노동리) 외딴 마을 계방산 중턱 이승복군의 집에 침입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산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지치고 군경의 추격을 피해 도주하던 중이라 다급한 나머지 공산주의를 선전하며 그들에게 동조해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항거하자 순식간에 가족을 살해하였다. 그러나 이승복군의 친형인 학관(당시 15세)은 공비가 찌른 칼에 36곳이나 찔리는 중상을 입고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따라서 공비의 만행이 온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9살의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승복군의 넋을 위로하고 청소년의 통일 안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1975년 10월 14일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대관령 정상에 이승복반공관을 설립하여 7년간 운영하다가 흩어진 유적을 단지화하고자 1982년 10월 26일 현 위치로 이전 개관하였다.

[대중교통]
# 시내버스
* 진부 - 기념관 경유 - 장평
* 장평 - 기념관 경유 - 진부
# 시외버스
* 서울 - 장평 또는 진부 - 강릉 방면(운행 시간 = 06 : 40부터 18 : 50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출발)
* 원주 - 장평 또는 진부 - 강릉 방면(운행 시간 = 06 : 00부터 19 : 30까지 약 30분 간격으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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