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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성불사지석장승 - 화천성불사지석장승(華川成佛寺址석장승)

by 넥스루비 2007. 8. 7.
강원 화천군 간동면 유촌리 산20-2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성불사지<成佛寺址> 석장승<石長丞>은 유촌리<楡村里>의 용화산<龍華山> 동록<東麓>에 위치한 성불사지<成佛寺址>에서 다시 정상<頂上>쪽으로 약 600m정도를 떨어진 암자<庵子>터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장승은 허리부분에서 두 조각으로 부러져 하반신<下半身>은 땅에 오랫동안 묻혀 있었으나 최근 발견되어 1993년 5월 마을주민이 복원하였다. 크기는 키 196㎝, 어깨너비 60㎝이며, 두께는 얼굴 58㎝, 몸통 47㎝이며 재료는 화강암<花崗岩>이다.
이 장승은 두 손을 모아 홀<笏>을 쥐고 선 문인석<文人石> 모양의 건장한 무인상<武人像>으로, 눈과 코가 크고, 둥글고 후덕한 뺨, 그리고 턱을 앞으로 내민 모습은 돌장승의 일반적 인상<一般的 印象>과 상통<相通>한다. 성불사지<成佛寺址> 장승은 문인석<文人石>의 몸체에 신장<神將> 얼굴을 하였는데, 몸체를 이처럼 온전하게 조각<彫刻>한 것은 보기 드물며, 대개의 호법<護法>장승 얼굴이 귀면형<鬼面型>으로 발전<發展>·유행<流行>하였음에 반하여 인면<人面>을 유지하면서 신장<神將>의 인상<印象>을 표출한 수작<秀作>이다. 아울러 전립형태<氈笠形態>의 모자를 쓰고 구슬띠를 한 모습은 전형적인 무장<武將>의 외모<外貌>로서 희귀<稀貴>한 예이며, 강원도<江原道>에는 호법<護法>장승이 없다고 알려진 이제까지의 인식<認識>을 바꿔주는 중요한 자료<資料>이다.
제작시기<製作時期>는 호법<護法>장승이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들어와 만들어지기 시작한 점과 성불사<成佛寺>의 폐사시기<廢寺時期>로 판단할 때는 조선시대 전기<朝鮮時代 前期>로 볼 수 있으며, 건립장소<建立場所>가 성불사<成佛寺> 어귀가 아닌 산등성이 암자<庵子> 옆이라는 점에서는 본사<本寺>가 폐사<廢寺>된 후 암자가 유일한 가람<伽藍>이었던 조선중기 이후<朝鮮中期 以後>로도 볼 수 있다. 호법<護法>장승에 각자<刻字>가 없으면 그 연대<年代>가 아주 오래되거나 아주 근래<近來>의 작품<作品>이라는 점에서 명문<銘文>이 새겨진 나주 운흥사지<羅州 雲興寺址> 장승(1719)이나 남원 실상사<南原 實相寺> 장승(1725)보다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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