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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주축성비 - 임진왜란때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수축한 사실을 기록한 비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동래구 온천동 산13-3

이 비는 임진왜란< 壬辰倭亂 >으로 폐허가 된 동래성< 東萊城 >을 조선< 朝鮮 > 영조< 英祖 > 7년(1731) 동래부사< 東萊府使 > 정언섭< 鄭彦燮 >이 다시 쌓은 공을 칭송하고 성을 쌓는 일을 분담하여 맡았던 사람들의 직책과 성명을 기록한 것이다.
신해년< 辛亥年 >(1731) 1월에 성터를 측량하기 시작하여 4월에 성벽을, 5월에 성문< 城門 >을, 7월에는 문루< 門樓 >를 완성하였는데, 52,000여명의 장정을 동원하였는데 쌀 4,500여 섬과 베 1,550필, 13,400여냥어치의 재물이 소모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전의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 >』에는 동래읍성이 석축으로 둘레 3,090척에 높이 13척이며 성안에 6개의 우물이 있다고 하였는데, 새로이 완성된 동래성은 둘레 2,880보로 8리 가량되며, 성의 길이가 예전보다 길어졌다고 했다.
성을 쌓는 일이 끝난 뒤 정부사< 鄭府使 >는 성안에 조미< 租米 > 4,000여섬을 비축하여 두고 수성창< 守成倉 >이라 하였으며 수첩군관< 守堞軍官 > 200인을 차출하여 성을 지키도록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이 비석은 영조 11년(1735)에 남문 밖 농주산< 弄珠山 >에 세운 것을 영조 41년(1765)에 옮겨 세웠다가 순조< 純祖 > 20년(1820)에 다시 남문자리에 옮겼던 것을 일제시대< 日帝時代 >에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비문< 碑文 >은 황산도< 黃山道 > 찰방< 察訪 > 김광악< 金光岳 >이 짓고 송광제< 宋光濟 >가 썼으며 전< 篆 >은 현풍현감< 玄風縣監 > 유우기< 兪宇基 >의 글씨이다.


[대중교통]
지하철 온천장역에서 하차
버 스 77번, 110번, 51번, 37번, 8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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