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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의용단 - 죽기를 각오하고 왜군과 싸운 수군과 성민 25인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수영구 수영동 366

임진왜란(壬辰倭亂)으로 동래성(東萊城)과 부산진성(釜山鎭城)이 모두 함락되고 국가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하였을 때, 수영성(水營城)의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 박홍(朴泓)은 한 목숨을 도모하여 성을 버리고 달아났다.
이때 수영성의 수병(守兵)과 성민(城民) 25명은 성문 밖의 선서바위에 모여 "싸우면 이겨서 살 것이요, 싸우지 않으면 망하리로다.
나라의 존망(存亡)이 경각(頃刻)에 있거늘 어찌 삶을 구하여 산야(山野)로 달아날 것인가, 단 한 번의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하리라"하고 피로 맹세한 후 바다와 육지에서 적(敵)을 상대로 유격전(遊擊戰)을 전개하였다.

25인의 이같은 의용(義勇)은 광해군(光海君) 원년(1609)에 지방민들의 청원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동래부사(東萊府使) 이안눌(李安訥)은 이때의 일들을 모아 정방록(旌傍錄)을 만들었으며, 이들의 집 문에 '의용(義勇)' 2자를 써붙여 25인의 충의(忠義)를 선양하였다.
또 순조대(純祖代)(1800∼1834)에 동래부사 오한원(吳翰源)은 이들의 후손들에게 역< 役 >의 의무를 면제시키고 포상하였으며, 철종(哲宗) 4년(1853)에는 경상좌수사(慶尙左水使) 장인식(張寅植)이 이들의 사적을 기리는 비를 세워 의용단(義勇壇)이라 하고 봄·가을 두 차례에 걸쳐 제사를 받들어 왔었는데, 최근에는 수영기노회(水營耆老會)에서 제사를 주관하여 모시고 있다.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 부산도시고속도로 -> 대연램프 KBS 방송국 -> 수영로타리 -> 수영공원

[대중교통]
* 부산역에서 버스로 약 40-50분 소요.
버스로는 40, 42, 139, 140, 240번
좌석버스로는 30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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