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구 중대동 7
목조관음보살좌상은 파계사 원통전 주불로서 유리상자로 씌워져 단독으로 봉안되어 있다. 높이는 108.1 cm 로, 복장발원문(腹藏發願文)에 의하면 세종 29년(1447)에 이 불상을 중수한다고 적혀 있어 조성연대는 그보다 더 앞섬을 알 수 있다.
고려 후기 불상양식을 따른 것으로 신체가 장대한 면을 보이는 유형의 보살상에 속한다. 삼중(三重)의 높고 화려한 보관(寶冠)과 통견의(通肩衣)를 걸치고 있으며 온몸에 장엄하고 복잡한 영락(瓔珞)을 표현하였는데, 전체적으로 둔중(鈍重)한 느낌을 준다. 허리가 길고 얼굴을 들고 바로 앉은 상현좌(裳懸坐)의 자세로, 법의 속으로 깊게 트인 가슴에 수평으로 입혀진 상의와 띠매듭이 보이는 것은 조선시대에 유행한 불상의 착의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가슴에 늘어진 목걸이와 양 어깨 위로 걸쳐서 가슴과 배, 다리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영락은 전신을 감싸듯 장식하여 보살상에 대한 조식(彫飾)을 강조하였다.
1979년 목조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御衣)가 나와 학계의 관심을 끌었고,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목조관음보살좌상은 파계사 원통전 주불로서 유리상자로 씌워져 단독으로 봉안되어 있다. 높이는 108.1 cm 로, 복장발원문(腹藏發願文)에 의하면 세종 29년(1447)에 이 불상을 중수한다고 적혀 있어 조성연대는 그보다 더 앞섬을 알 수 있다.
고려 후기 불상양식을 따른 것으로 신체가 장대한 면을 보이는 유형의 보살상에 속한다. 삼중(三重)의 높고 화려한 보관(寶冠)과 통견의(通肩衣)를 걸치고 있으며 온몸에 장엄하고 복잡한 영락(瓔珞)을 표현하였는데, 전체적으로 둔중(鈍重)한 느낌을 준다. 허리가 길고 얼굴을 들고 바로 앉은 상현좌(裳懸坐)의 자세로, 법의 속으로 깊게 트인 가슴에 수평으로 입혀진 상의와 띠매듭이 보이는 것은 조선시대에 유행한 불상의 착의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가슴에 늘어진 목걸이와 양 어깨 위로 걸쳐서 가슴과 배, 다리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영락은 전신을 감싸듯 장식하여 보살상에 대한 조식(彫飾)을 강조하였다.
1979년 목조관음보살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御衣)가 나와 학계의 관심을 끌었고,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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