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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 행정적, 군사적 목적을 위한 시설, 모양성

by 넥스루비 2016. 11. 5.

조선초기의 석축읍성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고창지역이 백제때 모량부리(牟陽夫里)로 불리웠던데서 연유한 듯 하다. 고창읍성은 평지와 산 기슭을 감싸면서 축조한 산성과 평지성의 절충식 평산성(折衝式, 平山城)이다.

현재, 성의 둘레는 1,680m(치성을 포함하면 길이 1,725m)이며 외성(外城)이 없는 이성의 해자(垓字) 길이는 약 3㎞에 이르고 있다. 성의 높이는 4m 내외인데 읍성에 관한 여러 기록들에는 12척(尺)으로 표기되어 있다.

성의 넓이는 50,172평이며, 성문은 정문인 북문과 동문, 서문이 있고 각문에는 문루(門樓)가 세워져 있으며 각 성문 밖에는 편문식(偏門式) 반원형 옹성(甕城)이 부설되어 있다. 또한 치성이 동 · 서 · 남 · 북 · 동남 · 서북 등 6개소에 설치되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다.

1976년 발굴조사 결과 서문지(西門址)와 동문지(東門址)가 확인되었으며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는데, 최근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깝도록 재현시켜 놓았다. 

누문(樓門)의 유지도 조선시대 읍성에서 흔히 보이는 홍예문과 초루를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주초와 문짝을 달던 홈이 파인 누문이어서 이것이 서울의 돈화문(敦化門) 홍화문(弘化門) 또는 평양의 고구려시대의 성문과 보은의 삼년산성(三年山城)이나 강화읍성들에서 볼 수 있는 양식과 비교되는 것으로 성곽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이와같은 읍성의 존재는 중국,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태로서 행정적, 군사적 목적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시설이었다. 특히 이 성은 부녀자들의 답성(踏城) 민속으로 유명한데, 이는 한 해의 재앙, 질병을 가시게 하는 기양의식(祈禳儀式)의 하나로 좋은 민속자료이다.

사진 story.kakao.com/jkkim 김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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