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음이덕형선생묘및신도비 - 조선 중기의 문신 이덕형선생의 묘 및 신도비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양평군 양서면 목왕1∼2리 산82

조선< 朝鮮 > 중기< 中期 >의 문신< 文臣 > 이덕형(1561∼1613) 선생의 묘 및 신도비이다. 선생의 자는 명보< 明寶 >, 호는 한음< 漢陰 >, 시호< 諡號 >는 문익공< 文翼公 >이다. 선조< 宣祖 > 13년(1580)에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문학에 통달하여 어린 나이로 봉래< 蓬萊 > 양사언< 楊士彦 >과 막역한 사이였다. 선조 25년(1592) 예조참판< 禮曹參判 >과 대제학< 大提學 >을 겸임하며, 임진왜란< 壬辰倭亂 >이 일어나 왜적이 패수< 浿水 >까지 쳐올라와 화의를 청하니 선생은 단독으로 적진에 들어가 대의로써 그들을 공박하였고, 정유재란시< 丁酉再亂時 > 좌찬성< 左贊成 >에 올랐고 좌의정< 左議政 >·도체찰사< 都體察使 >·영의정< 領議政 >이 되었으며, 호성선무공신호< 扈聖宣武功臣號 >를 받았다. 한때 영중추부사< 領中樞府事 >로 한직에 있다가 1608년 광해군< 光海君 >이 즉위하자 진주사< 陳奏使 >로 명< 明 >나라에 다녀와서 영의정에 복직되었다. 광해군 5년(1613) 영창대군< 永昌大君 >의 처형과 폐모론< 廢母論 >을 반대하다 사직, 양근< 楊根 >에 내려와 국사의 그릇됨을 상소< 上疏 >하며 세월을 보내다 53세로 세상을 버렸다. 신도비< 神道碑 >는 효종< 孝宗 > 4년(1653)에 세운 것으로 비< 碑 >머리 전자< 篆字 >는 정규상< 鄭奎祥 >이 썼는데 '영의정문익공한음선생신도비명< 領議政文翼公漢陰先生神道碑銘 >'으로 되어 있고 비문< 碑文 >은 조경< 趙絅 >이 찬< 撰 >했으며 글씨는 오시O< 吳始O >가 쓴 것이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