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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중흥사지 - 북한산 노적봉(露積峰) 아래에 있었던 사찰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259

북한산 노적봉<露積峰> 아래에 있었던 사찰로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에 고승 보우<普愚>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이 절이 대규모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의 양란을 겪고 난 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외곽에 대대적인 축성을 하여 북한산성을 완성한 숙종<肅宗> 39년(1713)이후다. 축성 당시에는 30여 칸 정도의 소규모 사찰이었으나 성이 완성된 뒤 136칸의 대찰<大刹>로 증축이 이루어졌다. 성내에는 성을 지키기 위한 승군<僧軍>이 주둔하였는데 중흥사는 승군이 주둔하였던 북한산성 안의 11개 사찰을 관장하는 대규모의 사찰이 되었다. 왕실에서도 8도의 사찰에 명을 내려 1년에 6차례 교대로 의승<義僧>을 뽑아 올리게 하여 11개 사찰에 주둔시켰다. 승군의 정원은 360명으로 11개 사찰에는 각각 수승<首僧> 1인과 승장<僧將> 1인을 두었으며 이들을 총지휘하는 본부로 승영<僧營>을 설치하고 승대장<僧大將> 1인을 임명하여 팔도도총섭<八道道摠攝>을 겸임하게 하였다. 중흥사는 승대장이 머물렀던 북한산성의 승영이었다. 그리고 이들 승병의 주둔에 필요한 물품과 군기물을 저장하기 위한 승창<僧倉>을 이 절을 비롯한 여러 사찰에 두었다. 승영 당시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앞쪽에는 누각인 만세루<萬歲樓>와 나한전<羅漢殿>을 두었고 동쪽에는 산신당<山神堂>이 있었다고 하며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그러나 1915년에 홍수로 무너진 뒤 중건되지 못하여 지금은 옛터에 주춧돌과 축대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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