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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조선백자도요지 -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물과 나무, 흙의 조달이 용이한 광주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광주군 퇴촌면

경기도< 京畿道 > 광주< 廣州 >는 도자기를 굽는데 필요한 물과 나무, 흙의 조달이 용이< 容易 >한 곳이다. 영조< 英祖 > 28년(1752)에 조선시대 궁중음식< 宮中飮食 >을 맡아보던 사옹원< 司饔院 >의 분원< 分院 >인 관영< 官營 > 사기제작소< 沙器製作所 >가 광주군< 廣州郡 > 남종면< 南終面 >에 이설< 移設 >되면서 조선왕조< 朝鮮王朝 >가 끝날 때까지 130여 년 동안 285개소의 가마가 광주 일대에서 번창< 繁昌 >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영 사기제작소의 국가< 國家 > 경영< 經營 >이 어려워지자 분원리< 分院里 > 요< 窯 >는 1883년 민영화< 民營化 >되었다. 민영화 이후 여러 계층< 階層 >의 수요< 需要 >와 요구< 要求 >에 따라 기형< 器形 >과 무늬< 紋樣 >가 다양하게 변화되어 청화백자< 靑畵白磁 >의 주산지< 主産地 >로 각광< 脚光 >받았다. 1910년 한일합병< 韓日合倂 > 이후 사회의 변혁< 變革 >과 일본 산업도자< 産業陶磁 >의 침투 등으로 우리의 전통< 傳統 > 사기 제조는 쇠퇴하기 시작한다. 1927년에 조사된 『조선의 요업< 窯業 >』에 의하면 1927년 당시에도 민간자본< 民間資本 >에 의한 값싼 자기가 생산< 生産 >되었다고 한다. 가마터는 남종면< 南終面 >을 위시하여 중부면< 中部面 >·퇴촌면< 退村面 >·초월면< 草月面 >·도척면< 都尺面 >·실촌면< 實村面 >·옥포읍< 玉浦邑 > 등 광주읍< 廣州邑 > 일대이다. 지금 가마터에는 일제강점기< 日帝强占期 >에 의해 세워진 국민학교< 國民學校 >가 있으나 사옹원< 司饔院 > 관원< 官員 >의 선정비< 善政碑 > 15기를 비롯하여 갑발조각· 도짐·도편< 陶片 > 등이 흩어져 있어 옛 가마터의 흔적을 보여준다.



[대중교통]
* 버스 : 동서울터미널-우산리까지 1일 2회 운행하며 1시간 소요
* 광주-우산리까지 1일 4회 운행하며 3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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