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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가 세운 절로 9산선종 중 가장 먼저 생긴 것

by 넥스루비 2016. 8. 25.

지리산의 북쪽 관문인 인월에서 심원, 달궁, 뱀사골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마천방면으로 가다보면 만수천(萬壽川)변에 호국사찰로 천년의 세월을 버티고 지내온 실상사가 나타난다.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증각대사가 세운 절로 9산선종 중 가장 먼저 생긴 것이다.

정유재란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았으며,현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 제10호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석탑과 보물 10여점을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약사전, 명부전, 칠성각, 선리수도원, 누각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 극락전과 부속건물이 있고 사천왕문을 최근에 완성하였다. 특히 불상에는 보화가 많이 들어있다 하여 일찍이 도굴꾼들에 의하여 훼손된 적이 있었다. 그 불상의 복장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원문(願文)과 사경(寫經) 및 인경(印經)이 수백권이나 있었고 고려판 화엄경소(華嚴經疏)등 보기드문 서적도 몇가지 있었다 하나 일부는 도난당하였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타버렸다 한다.

보광전은 홍척과 수척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범종이 걸려 있는데 이 종은 1664년에 만든 것으로 종을 치는 자리에 일본의 열도 지도 비슷한 무늬가 있어 종을 칠때 일본 동경 부분을 쳐서 일본의 야욕을 저지하고 우리나라 부흥을 기원하였다. 일제말기엔 간사한 위인의 밀고로 주지스님이 경찰에 잡혀가고 종에는 딱지가 붙어 8ㆍ15해방까지 벙어리가 되었었다. 실상사에는 눈길을 끄는 불교 문화유산이 많다. 국보 1점, 보물 11점, 거의가 정교한 솜씨로 다듬어진 석탑이요 탑 비, 거대한 철근여래상 등 수작들이다. 실상사를 처음 세운 홍척과 제2조 수철화상의 탑, 비등과 동서 두 탑, 백장암의 삼층석탑은 더욱 빼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실상사에는 백장암과 서진암, 약수암 등의 암자가 있으며 이곳에는 신라시대의 많은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실상사의 문화유적은 보물급에는 수철화상능가보월탑(33호·905), 수철화상능가보월탑비(34호), 석등(35 개산당시), 부도(36·고려), 삼층쌍탑(37·887), 증각홍척국사응료탑(38·861이후), 증각홍척국사응료탑비(39), 백장암석등(40·9세기중엽), 철조여래좌북(41·개산당시), 청동은입사향로(420·1584), 약수암목조탱화(421·1782)등 11점이 보존되어 있다. 지방유형문화재로는 극락전(45호·1684), 위토개량성책(88·토지대장), 보광전범종(138·1694)등3점이다. 중요민속자료는 실상사 입구의 만수천을 가로지르는 해탈교 양쪽에 세워져 있는 석장승 3기(15호)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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