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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대 유물 매장 해역 - 송·원대 유물 매장 해역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신안군 증도면 방축리

신안 해저 유물은 우연한 기회에 어느 어부가 원대의 청자화병 7점을 인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후로 문화재 관리국의 주관하에 1976년 10월부터 1984년 9월까지 약 9년간 10차에 걸쳐 유물 인양작업이 실시되었다. 이로 인하여 인양된 유물은 총 22,000여 점에 달하는데, 종류별로 분류하면 도자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금속제품이며, 이 밖에 목제품, 석제품 등이 있다. 도자기는 대다수가 중국 도자기이며 이중에는 고려 청자 7점과 일본 세또산 병 2점이 있다. 한편 침몰선에서 인양된 동전은 무려 28톤에 달하고, 선창에 적재되었던 자단목 1,017본과 선체편 445편 을 수습하였다. 이 선체는 현재 완전복원 중에 있는데 조사결과 선 체의 길이는 28.4m, 폭은 6.6m로 밝혀졌다. 신안 유물의 대종을 이루는 중국 도자기는 전체의 반 이상이 중국 절가성의 용천요청자이며, 그 다음으로는 강서성의 경덕진요의 백자가 3분의 1 정도 조금 넘고 그리고, 나머지는 흑유, 백탁유, 잡유 등 순이다. 용천요는 중국 절강성의 용천현의 산간지방에 있는데 20여 개소에 2백여 기의 요지가 발견된 곳이다. 풍부한 땔감과 무진장한 태사 등 천연의 뛰어난 입지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한말 육조 초에 발달 했던 절강성 북쪽에 있는 월주요의 영향을 받아 오대부터 청자를 굽기 시작하였다. 북송 말 남송 초에 월주요가 쇠퇴하면서 상대적으로 용천요가 점차 청자 생산지로 부상되었으며, 11세기부터 남 송까지가 절정기로 명말서 그 명맥이 끊어졌다. 한편 백잘 유명한 경덕진요는 강서성 부량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당말 오대에 개요한 곳이다 경덕진요의 역사도 용천요와 거의 비슷하여 송대 이래 비약적인 발전을 보았으며 명대에는 황실과 관용의 그릇을 굽는 어기창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신안 해저선의 침몰 연대는 우리나라 제주도를 경우 일본으로 향하려던 무역선으로서 지순 2년, 즉 1331년 이후 1350년 이전의 어느 시기로 추정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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