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명항영정병함부양무공신교서 - 풍모가 크고 인품이 뛰어났던 오명항의 초상

by 넥스루비 2007. 8. 7.

경기 용인시 구성면 마북리 245

오명항(吳命恒)의 초상은 관복 차림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 1본, 유복단령 (儒服團領)의 반영(半影) 1본이 구성면 마북리 245번지의 오세민 씨댁에 전한다. 전신교의좌상의 초상은 좌안팔분상(左顔八分像)이다. 사모각(紗帽角)의 철선(鐵線)은 구갑문(龜匣紋)으로 선묘(線描)되었다. 공수(拱手)의 녹포단령(綠袍團領) 위로 쌍학(雙鶴)의 흉배가 정교하게 모사(模寫)되었고, 그 위로 서대(犀帶)가 나타난다. 특히 오사모(烏紗帽) 아래 정제(精製)된 안모(顔貌)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명신 (名臣)으로서의 기품이 엿보인다.
안면 사출은 종두자리까지 세밀히 모사되어 형(形)과 영(影)의 사실적 표현에 매우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초상 우측 상단에는 오명항 생전의 직함과 증시(贈諡)된 충효공(忠孝公)의 시호가 기록되어 있다. 이 초상은 영조 4년(1728) 이인좌(李仁佐)의 난을 평정하고 해은부원군(海恩府院君)으로 봉해진 뒤 모사된 공신상(功臣像)으로 추정된다. 또한 반영(半影)의 초상은 흉배 없는 단령(團領)으로 서 전신상을 이모(移摸)한 것으로 보인다. 이 초상에서는 본래부터 풍모가 크고 인품이 뛰어났던 인물임이 역력하게 나타나는데, 가슴까지 흘러내린 턱수염이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오명항(1673-1728)은 현종 14년(1673)에 오수량 (吳遂良)의 아들로 태어나 편모슬하에서 자랐다. 숙종 31년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한 후 등용되어 영조 4년에는 경기·충청·전라·경상 4도의 도순무사(都巡撫事)가 되어 안성의 청룡산(현 용인시 원삼면 목신리 경계)에서 이인좌의 난을 평정하여 양무 1등공신(揚武一等功臣)에 책록되고, 해은부원군에 봉해졌다. 영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