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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곡사 현각선사탑비 - 연곡사 현각선사탑비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54

구전에 의하면 임란시 비신이 없어졌다고 하며 현재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구척본에 의하면 「사자금어 대신장신원서···(賜紫金魚 臣張信元書)」임을 알 수 있으나 그 밖의 내용은 파악할 길이 없다. 근성서화징(槿城書畵徵)에는「장신원(張信元)」항에 「장신원, 관상주국, 경종사년건, 연곡사현각선사비, 학사왕융찬, 주국장신원서재구례지리산(張信元, 官上柱國, 景宗四年建, 谷寺玄覺禪師碑, 學士王融撰, 柱國張信元書在求禮智異山)」이라 기록되었 는데 이것이 확인된 사실이라면 고려 경종4년 기묘(서기 979년)의 입비라는 것과 찬자 서자명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으로 된다. 그러나 현상태로서는 이들에 대한 아무것도 확인할 수가 없다. 전해지는 찬자 「왕륭」은 고려 광종때의 대상이었으나 진봉사로서 후주 에 다녀온 한림학사였고 성종 대에는 평장사(내사시랑)가 된 사람이었다. 서자 장신원 및 동비서에 근성서화징에는 「연곡비 체고 이출(동국금석평) 현각선사비자체류례천명, 심득해법, 정숙연수(서 청)( 谷碑 枯而出(東國金石評) 玄覺禪師碑字 類禮泉銘, 深得楷法, 精熟娟秀(書鯖))」라 평하여 당 태종의 구성궁례천명(九成宮醴泉銘)의 서풍임을 말하고 있다. 귀부의 조형은 호굉한 것이나 두부 체구는 모두 크게 절단되었다. 구연의 수염과 비좌의 사주측면에 조출된 귀꽃과 안상 등 고려 석 비의 형식을 구비하고 있으며 이수의 반용(蟠龍)도 결합이 견밀한 사실성이 두드러진 조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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