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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신장군상 - 임진난 때 다대포첨사로 부임하여 역전 끝에 순사한 윤흥신장군

by 넥스루비 2007. 8. 7.

부산 동구 초량3동

윤흥신은 파평인으로서 인종 때의 권세가인 윤임의 아들이라고 하며, 진천현감을 거쳐 1592년 임진난 때 다대포첨사로 부임하여 역전 끝에 순사하였다고 한다. 임진난 당시의 기록인 『징비록』에 『다대첨사 윤흥신은 힘써 싸우다 죽었다』고 하였고 『재조번방지(再造蕃邦志)』"왜적이 군사를 나누어 서평포와 다대포를 함락시키니 다대 첨사 윤흥신이 힘써 싸우다가 피살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임진난이 끝난 선조 37년(1604) 6월 25일에 공표된 선무공신록권에도 원종 1등공신에 올라 있다.

그런데 윤흥신의 사적과 다대포의 사적이 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영조 때 동래부사 조엄의 『윤공유사(尹公遺事)』, 동래부사 강필리의 『윤공사절기 (尹公死節記)』에 비롯된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다대포진에서는 선조 25년(1592) 4월 14일 적의 내습이 있었으나 첨사 윤흥신공을 비롯한 군, 관, 민은 성을 굳게 지켰으며, 15일 적군이 동래성을 공격할 때 한편으로는 적군의 공격을 다시 받고 첨사와 군, 관, 민은 끝까지 항전하여 첨사이하 많은 희생을 내고 성은 함락되었다. 윤흥신은 때마침 진에 와 있던 동생 흥제와 함께 순사하였다고 한다. 윤홍산공의 동래 충렬사에 영조 12년(1736)에 배향되어 그의 충혼을 길이 추모하고 있다.



[대중교통]
버스 : 103, 88-1, 88, 87, 28, 22, 190
지하철 초량역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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