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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광자대사탑 - 태안사 광자대사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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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 광자대사탑 - 태안사 광자대사탑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경내 입구에 탑과 탑비가 있는데 비는 일찍이 파괴되어 귀부와 이 수만을 남기고 있으나 이 탑은 손상 없이 보존되어 있다. 팔각원 당에 속한 부도로 지대석에는 2단의 괴임이 있어 기단하대석을 받치고 있는데 다시 그 하면에도 넓직한 괴임이 2단 마련되었다. 팔각 하대석 각면에는 당초문이 있고 이 위에 좁은 상단이 있는데 이곳 각면에도 역시 안상 2좌씩이 배치되었다. 그 위에 16엽복판 부연이 있고 각형3단의괴임이 있어 중대석을 받친다. 중대석은 매 우 낮으나 자연스럽고 팔각 각면에 옆으로 긴 안상 1좌씩이 있으며 상대석 또한 팔각으로 판내에 화형을 양각한 중판연화가 16엽씩 우미하게 조각되어 있다. 이 밑에는 2단의 각형 받침이 있고 상면에도 이 같은 괴임이 있어 마치 난간을 모방한 것 같은 1단을 마련하고 각면에 2좌씩의 안상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그 상면에 또 괴임이 마련되어 탑신을 받치고 있다. 탑신은 팔각으로 전후 양면에 탁상에 놓인 향로형이 모각되고 그 좌우로 사천왕 입상이 양각되었다. 옥개석 또한 팔각으로 목조 건축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옥리에는 각형 2중의 연목이 있으며 옥상에는 굵은 우 동을 장식 그사이로 기왓골이 각출되고 추녀에 이르러 암막새 숫막새까지 잘 나타내고 있다. 옥개석은 추녀에 이르러 얇아져서 육 중한 감을 덜었으며 전각의 반전도 적당하다. 상륜부는 거의 완전하게 보존되어 앙화, 부발, 보륜, 보주 등이 있고 팔각 앙화의 각면에 화형이 있으며 가부재마다 조각의 섬세를 잃지 않았다. 이 부도는 상하의 비례가 우아하고 정교하며 특히 상륜부의 완존은 이 탑의 완벽한 형태미를 보여주고 있다. 광자대 사는 신라말 고려 초의 고승으로 태안사의 2대 조사인데 탑비에 의하면 함통(咸通)5년, 즉 신라 경문왕 4년(서기 864년)에 출생하 여 고려 예종2년(서기 945년) 82세로 입적하였다. 탑비의 건립이 고려 광종원년(서기 950년)이므로 이 탑의 조성 년대도 이때로 추정된다. 태안사란 사명은 원래 대안사로도 불리어진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적인대사비 광자대사비문 내용을 보면 대안사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동국여지승람에는 태안사로 되어 있는바 현재의 태 안사란 사명은 조선조 초기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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