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필암서원은 하서 김린후를 주향하기 위하여 조선 선조 23년(1590)에 하서의 고향 마을 기산 아래에 건사되었다가 병화로 없어진 것을 인조 2년(1624)에 복원하였는데 그 후 유생들의 소청으로 현종 3년(1662) 필암서원이라 사액되었고 이어 1672년에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하서 김린후는 1510년 출생, 1560년에 죽은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과 심교하였고, 정자·박사·부수찬 등을 지내다가 을미사화 후에 는 일체 세파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학문에만 힘쓰며 여생을 보냈다. 서원내 건물 중에 장서각과 장판각이 있는데 이곳에 각종의 전적 과 하서집의 판목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인종의 묵죽과 하서유묵 등 60여건의 귀중한 사료가 보관되어 있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린후를 주향하기 위하여 조선 선조 23년(1590)에 하서의 고향 마을 기산 아래에 건사되었다가 병화로 없어진 것을 인조 2년(1624)에 복원하였는데 그 후 유생들의 소청으로 현종 3년(1662) 필암서원이라 사액되었고 이어 1672년에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하서 김린후는 1510년 출생, 1560년에 죽은 성리학자로 퇴계 이황과 심교하였고, 정자·박사·부수찬 등을 지내다가 을미사화 후에 는 일체 세파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학문에만 힘쓰며 여생을 보냈다. 서원내 건물 중에 장서각과 장판각이 있는데 이곳에 각종의 전적 과 하서집의 판목이 소장되어 있으며 이외에도 인종의 묵죽과 하서유묵 등 60여건의 귀중한 사료가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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