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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윤씨가전 고화첩 - 해남윤씨가전 고화첩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지본수묵 혹은 담채한 소품들을 어떤 체계없이 집성한 것으로 크기나 소재가 각양각종이며 기법 또한 특이하여 공재 윤두서의 화풍의 이면을 보여주는 자료라 하겠다. 그의 장기인 기마도나 마하도(馬夏圖), 잔산잉수(殘山剩水), 향토적 습속을 소재로 한 시거도(施車圖), 부녀채산도필(婦女採山圖筆)은 그 중에서도 가품이라 할 것이다. 또 공재 윤두서는 「인물에 능력이 편중되어 있고, 산수는 잘하는 바가 아니다(偏工人物而山水非其所長)」이라하여 인물에 장기가 있었던 것 같고, 그 기량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 나타나 있듯이 숙종이 그 어용모사에서 공재를 생각하였으나 남구만의 반대로 이루지 못한 일, 또 사인(士人) 심득경(沈得經)초상의 추작사실 등이다. 그러나 인물화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그의 기량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이 화첩과 함께 보존되어 온 그의 자화상이라 하겠다. 조선조 후기 초엽에 속할 화단 연대기적인 면에서 보아도 그는 산수나 기마인물에 있어서 송대원체풍내지는 후대의 화보풍을 가장 두드러지게 견지한 대표적 존재였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사인화가였고 진사시에 오른 뒤에도 벼슬에 나오지 않고 숙종어진(肅宗御眞) 관계의 일이 있은 후 절필아혔다는 전문은 사인으로서 순수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윤두서의 자는 효언, 호는 공재, 해남인으로 찹의 윤선도의 증손으로 1668년 출생 1715년 48세로 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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