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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천사 석장생 - 법천사 석장생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무안군 몽탄면 달산리 144-1

법천사 석장생 승달산의 동쪽계곡에 위치한 법천사 입구의 소로 좌 우측에 서있다. 법천사는 청계<-->일로간 815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다 감돈 저수지에서 북쪽으로 4.5km떨어져 위치한 유서깊은 사찰로서 <동국여지승람> 무안군 산천조에 "원나라 임천사의 승 원명이 바다를 건너와 이 산에 암자를 짓고 임천에 있던 제자 500명이 원명을 찾아와 달도를 하여 승달산이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찰의 남쪽입구에 세워진 이들 장승은 인면 형상을 하였는데 길의 북쪽이 남장승, 마주하는 남쪽이 여장승이다. 두장승의 조각수법은 목부분만 뚜렷하게 파내어 상하를 구분하였고 얼굴의 눈 . 코. 입 등은 주위만을 파내어 사실적인 입체감은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장성의 보편적 인상인 해학과 괴기스러움을 아울러 갖추고 있어 벽아의 상징성이 잘 표현되고 있다. 법천사 입구에 세워진 이들 장승은 사찰의 재산과 금렵,불살생, 잡귀를 막아주는 금표적 기능과 사역표식의 기능을 갖는 사찰장승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장승의 코를 청정수에 타 마신다든지 돌을 쌓고 가정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 튼튼한 아들을 갖기 위해 장승의 배에 아낙네들이 자신의 배를 맞추어 본다든지 하는 것 등은 사찰장승의 본래 기능에 구복과 기자라는 민간신앙적 요소, 그리고 석적단과 성황당 신앙이 뒤에 가미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법천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 이들 장승은 법천사의 연혁이 분명치 않은 상태에서 그 유래를 정확히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 장승과 같은 인면형의 장승이 조선후기에 주로 나타난다는 점과 사찰 중수기에 법천사의 중건이 인조대(1623 - 1649)였다는 점이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보면 이들 장승의 제작시기도 일단 이때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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