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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제7전시관(대한민국관) - 조국통일의 의지 및 미래상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남 천안시 목천면 남화리 230번지

우리 민족은 지속적인 독립투쟁과 연합군의 승리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광복 후 남북한으로 국토가 분단되고, 공산주의와의 대립으로 민족의 소망과는 달리 혼란과 고난이 거듭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소련 중공의 지원을 받은 북한의 남침으로 1950년 6.25동란이라는 민족적 불행이 초래되었다. 전쟁 초기, 북한의 기습을 받은 우리 국군은 병력과 장비의 부족으로 낙동강까지 밀렸으나, 북한의 침략을 불법 행위로 규정한 국제연합의 결의에 의해 16개 우방국 군대로 구성된 국제연합군과 함께 반격을 개시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또 다시 한강 이남까지 후퇴하였다가 다시 반격하여 일진 일퇴가 거듭되었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북한측에서 휴전을 제의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되었다.

6.25동란으로 황폐해진 대한민국은 전후 복구에 전력을 기울여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치적 안정을 찾기는 어려웠다. 1960년 자유당이 부정 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 하자 민주화를 열망한 국민등과 학생들이 4.19혁명을 일으킴으로써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제2공화국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는 사회 질서를 유지할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정치적 혼돈이 거듭되는 가운데 5.16이후 군사 정부가 들어섰다. 군사 정부는 2년 후 민정 이양에 착수하여 제3공화국이 출범하였다. 정부는 1960년대에 경제 성장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여 경제 발전의 터전을 마련하였고, 1970년대부터는 농어촌의 근대화를 위한 새마을 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제4공화국이 출범한 후 경직된 체제와 장기집권에 대한 반발 등으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되던 중 10.26사태가 발생하였다.

1980년대에는 복지국가, 민족통일을 지향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문호를 보다 넓게 개방하여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치루었고 동구권과의 외교수립 등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서 1991년에는 남북한이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교류의 길을 열어 평화적인 통일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 전시관에는 1945년 조국 광복 이후 민족의 자주 독립 국가 건설과 그 번영을 기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민족 시련과 극복, 국가 발전 관계 자료들과 조국 통일의 의지 및 조국의 미래상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미지 설명(이미지를 클릭하면 고유번호가 보입니다)
(1) 제헌헌법 (2) 정부수립 (3) 6.25의 실상 (4) 유엔참전 (5) 50년대의 자화상 (6) 4.19 (7) 제2,3,4공화국의 사회상 (8) 제5,6공화국의 사회상 (9) 경제 개발 계획 (10) 생활상 변천 과정 (11) 한강 종합 개발 모형 (12) 세계속의 한국 (13) 평화통일 노력 (14) 2000년대 미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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