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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각기 - 관아(官衙) 건물의 건립 전말을 판각한 기문(記文)

by 넥스루비 2007. 8. 7.
제주 제주시 이도1동 1313

홍화각<弘化閣>등 관아<官衙> 건물의 건립 전말을 판각한 기문<記文>이다. 제주목 관아가 모두 불탄 뒤 1435년(세종17)에 최해산<崔海山> 안무사가 홍화각<弘化閣> 등 여러 건물을 다시 지었는데, 홍화각기<弘化閣記>는 바로 그 간의 경위를 밝히기 위해 고득종<高得宗>이 지은 글이다. 그 기문<記文>의 일부를 인용해보면, "공<公>(최해산<崔海山>)이 정사<政事>가 성취되고 인심이 화하여지자, 관우<館宇>의 허물어진 것을 수축하려고 폐허가 되어버린 절의 재목과 기와를 가져다가 먼저 거처하는 집을 일으키니, 거문고 타는 당<堂>과 욕실·부엌·랑사<廊舍>의 위치가 갖추어졌다. 조금 서편으로 집 한 칸을 세워서 당<堂>을 만들고, 또 그 서쪽에 집 세 칸을 세우고 겹처마로 보충하니, 그 규모가 굉걸하고도 정밀하고 그 제도가 웅장하고도 화려하였다. 그 남쪽에 반랄<半剌>(판관<判官>)의 당<堂>을 세우고 그 북쪽에는 나라에 바치는 말의 마구간을 두고 동쪽에는 창고를 두고 서쪽에는 온돌방을 두었다. 또 그 남쪽에 문루<門樓>를 지어 아래로는 드나들게 하고 위에는 종과 북을 달았고, 약<藥>창고와 기<旗> 두는 곳이 동서에 서로 대하여 모두 서 있다. 모두 담으로 둘렀으며, 집이 도합 2백 여섯 칸인데, 집들이 서로 연접<連接>하지 않은 것은 화재를 예방한 것이다. 그 경영과 위치와 제작이 정당함을 얻은 것은 모두 공<公>의 지시와 규획<規劃>에서 나왔다"고 하였고, '홍화각<弘化閣>'이라 한 현액<縣額>은 "무릇 임금의 근심을 나눈 자가 날마다 이집에 올라서 편안히 놀지도 말고 방종히 하지도 말아서 맡은 직책을 다하기를 생각하여, 항상 왕화<王化>를 넓히고(홍<弘>), 백성의 사정을 상달<上達>시키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면 제주 백성들이 무궁하게 복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홍화<弘化>라고 이 집을 이름하지 않으랴"고 하여, 성군<聖君>의 덕을 온누리에 널리 알리고 덕화<德化>로써 백성을 다스린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글전체의 내용은 제주도의 지형과 역사를 우선 간략히 서술한 뒤에 최해산의 인품과 선치<善治>를 찬양하였고, 다음으로 홍화각의 건립 내력과 홍화각이라 명명<命名>한 이유를 적고 있다. 또 '홍화각<弘化閣>'이란 제액<題額> 세 글자도 고득종 자신이 직접 써서 게시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현재 '홍화각기<弘化閣記>' (263×67.5㎝)와 '홍화각<弘化閣>' (163×65.6㎝) 액자는 모두 고양부<高梁夫> 삼성사재단<三姓祠財團>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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