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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성 - 금오산의 정상부와 계곡을 이중으로 두른 석축산성(石築山城)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구미시 남통동 산 33외 6필

이 성은 해발 976m의 험준한 금오산의 정상부< 頂上部 >와 계곡< 溪谷 >을 이중< 二重 >으로 두른 석축산성< 石築山城 >이다. 내성< 內城 >은 산의 윗부분에 둘레가 10리나 되도록 쌓았는데, 절벽이 험한 곳은 천연< 天然 >의 성벽을 이루고 있으므로 따로 쌓지 않았다. 외성< 外城 >은 계곡을 감쌌는데 둘레가 5리나 되며, 내·외성벽의 길이는 6.3km나 된다. 고려시대< 高麗時代 > 이전부터 있었던 성터로 고려 말기에 왜구< 倭寇 >의 침입 때 보수하여 선산< 善山 >·인동< 仁同 >·개령< 開寧 >·성주< 星州 > 등의 백성들이 성에 들어와 지키게 하였다. 조선< 朝鮮 > 태종< 太宗 > 10년(1410)에 국가적 계획으로 크게 고쳐 쌓았으나, 외민족의 침입이 없자 차츰 폐허가 되었다가 임진왜란< 壬辰倭亂 > 때·병자호란< 丙子胡亂 > 때·고종< 高宗 > 5년(1868)에 계속해서 고쳐쌓았으며, 조선 후기에는 선산도호부사< 善山都護府使 >가 금오산성< 金烏山城 > 수성장< 守城將 >을 겸하며 개령< 開寧 >·금산< 金山 >·지례< 知禮 > 등의 고을이 군창< 軍倉 >을 이곳에 두었었다. 외성을 쌓아 이중으로 만든 것도 이때의 일이었는데 지금은 내성, 외성의 문터< 門址 >와 암문< 暗門 >의 형체가 남아 있다. 성안에는 폭포가 있는 계곡과 연못·우물이 많았고, 각종 건물이 있었으나 모두 폐허가 되었다. 내성창< 內城倉 >·대혜창< 大惠倉 > 등의 창고< 倉庫 >와 진남사< 鎭南寺 >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부근에는 도선굴< 道詵窟 >·금오서원< 金烏書院 >·길재사< 吉再祠 > 등이 있었다. 지금은 성안에 금오산성중수송공비< 金烏山城重修頌功碑 >가 남아 있어 옛 번창할 때의 성안모습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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