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절부암 - 절개를 후세에 기리며 기념하는 바위

by 넥스루비 2007. 8. 7.

제주 북제주군 한경면 용수리

절부암은 열부(烈婦) 제주 고씨(高氏)의 절개를 후세에 기리며 기념하는 바위이다. 조선왕조 말, 차귀촌(遮歸村) 출생의 고씨는 19세 되는 해 같은 마을에 사는 강사철(康士喆)에게 출가하여 단란하게 지냈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어부 강사철이 고기잡이 나갔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 불행하게도 변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처 고씨는 애통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식음을 잊고 시체나마 찾으려고 며칠동안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해안을 배회하였으나 끝내 남편을 찾지 못하자 남편의 뒤를 따르는 것이 도리라 생각하여 소복을 단장하고 용수리 바닷가 속칭 '엉덕동산' 숲에서 나무에 목매어 자살하고 말았다. 그러자 홀연히 남편의 시체가 이 바위 나무 아래 밑에 표도(漂到)하였으므로 사람들은 말하기를 "고씨야말로 조아(曹娥)의 포시(抱屍)와 같다."고 감탄하였다. 조아(曹娥)는 조간(曹肝)의 딸이다. 조간은 143년(漢安 2) 강을 건너다가 급류에 빠져 죽었다. 14세의 효녀 조아는 날마다 울면서 70일을 강가를 헤매었다. 시체를 찾지 못하자 드디어 강물에 빠졌는데 5일만에 아버지 조간의 시체를 안고 물 위에 떠올랐다. 1866년(고종 3) 판관 신재우(愼載祐)는 고씨가 자결한 바위에 절부암(節婦岩)이라 새기게 하고, 관(官)에서 강사철과 고씨 부부를 합장(合葬)하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전(祭田)을 마련하여 용수리민으로 하여금 매년 3월 15일에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만대에 기리게 하였다

댓글

최신글 전체

이미지
제목
글쓴이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