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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대웅전 - 백양사 대웅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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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사 대웅전 - 백양사 대웅전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08.07 00:09

전남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 26

백양사는 백제 무왕 33년(632) 여환조사가 현 운문암 자리에 절 을 짓고 백암사라 하였다 한다. 그러나 백암산 정토사 사적(지정 원년 1341)에 의하면 위 내용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백양사 「극 락전불량계서」기록에도 「가람기명왈정토창어정관지칠년역라려 천유여재‥‥」라 하여 초창당시(정관7년 633)부터 정토사란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또 1894년(도광 29)에 노사 기정진이 쓴 사적기에도「백암산 정토사」라 기록되고 있어 현 백양사란 이름이 언제부터 쓰여졌는지 알 길이 없다. 조선사찰사료의「극락전불량계서」에 「문정왕후뢰향축열서」라 는 내용에서 보면 당시 백양사는 조정 왕실의 상당한 후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형식을 보면 높직한 장대석으로 다듬은 3단의 기단에 원 형주 초석을 놓았으며 기둥은 오간 모두 민흘림의 원주를 세웠다. 기둥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두르고 그 위에 공포를 장식하였는데 출목수는 외 2출목, 내 3출목이며 각 주간 사이에는 공간포 2구 씩을 배치하여 더욱 장엄함을 더했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화려한 단청이 아직도 선명하다. 창문 은 오간 모두 사분합인데 네짝문이 빗살문이며 위에 교창을 두지 않았다. 조선후기 다포양식은 포작에 있어서 심히 장식적이며 또한 모든 절제를 벗어나 활달한 창작의 세계로 달리는 경향이 있으나 백양 사 대웅전의 경우는 첨차살미의 최상단은 예리한 삼각형 모양에 서익공계 모양으로 변화하였으며 쇠서도 매우 섬약해진 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조선후기에 들어서 사찰 건물들의 거의 공통된 예라 할 것이다. 현 대웅전은 1917년 한말 송경암대종사가 다섯번째 창한 것이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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