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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남문창의비 - 장성 남문창의비

by 넥스루비 2007. 8. 7.
전남 장성군 북이면 사거리 714

이 비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 해 장성 남문에서 궐기한 의병단으 전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순조 2년(1802) 호남 유림의 중론에 의하여 건립된 유적비다. 그 형태는 사각의 좌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팔작지붕형의 옥개석을 씌운 평범한 비이다. 비각은 정면 1간, 측면 1간, 팔작지붕이며 공포는 익공식이다. 이 비의 특이한 점은 비의 명제가 둘이나 기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전면 중앙에 종서 해서체로 "호남어산남문창 의비"라고 하였고, 하나는 후면과 좌우측 양면을 통하여 비 신 상단에 횡서 전서체로 "유명조선호남어산남문창의비"라 하였다. 그리고, 전면에는 비제 좌우 공간에 의병단의 중요 인물 77인의 명단을 기록하였는데, 신분별로 나누어 먼저 제 현위치 67인, 다음 의승장 7인, 마지막으로 사논 3인을 기록하였다. 비문의 선자는 보국숭록대부행중구부사겸이조판서판 의금부사지경연사홍문관대제학예문관대제학지춘추성균관사세 자우빈객 홍량호이고, 서자는 자헌대부행의정부우참찬겸동지 경염사춘추관사홍문관제학 황승원이며, 전서자는 통정대부경 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 김부도로 되어있다. 장성 남문 창의라 함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해, 비문 에 기록된 "맹주동중구" 김경수, "의병장충강공" 김제민, "부 사증참의" 기효간, "참모좌랑" 김홍주, "종사증참의" 윤진, "의곡장현감" 기효증 등이 전라도 일대에 격문을 돌려 의병 을 모집하고, 당시 장성현감 이귀의 협력을 얻어 남문에 의 병청을 설치하고 의병활동을 한 것을 말한다. 그리하여, 장성군을 비롯하여 영광 공창 태인 담양 나주 함평 광주 정읍 무 장 등 전라도 각 지로부터 의병이 모여들어 그 세력이 자못 강대하여 제일차로 출전한 고경명 의병군이 패퇴한 후 전라 도 지방 의병활동의 주류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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