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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석조여래좌상 - 광배에 비천상이 있는 매우 드문 예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595번지

양산시 물금면 물금리의 용화사(龍華寺)에 봉안된 통일신라 시대의 석조여래좌상, 높이 1.25m, 좌대높이 95cm, 광배높이 150cm.
원래는 부근의 강변 밭에 있던 것을 1947년 2월 법당을 중수(重修)하면서 옮겨와 주존(主尊)으로 모시고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 불상은 강건너 김해군 상동면 감로리(甘露里) 감로사지(甘露寺址)에 있었던 것을 구한말(舊韓末)에 강변으로 옮긴 것이라 하나 자세히 알 수는 없다.
광배(光背)와 좌대(座臺)를 모두 갖추었지만 광배의 상부가 약간 파손되어 제자리에 올려놓지 못하고 뒤쪽에 두었었다. 여기에 호분(胡粉)을 두텁게 바르고 채색도 하여 원래 모습이 아닌 것을 1997년 호분과 색깔을 벗기고 깨어진 부분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이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나 육계(肉계)는 파손되어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았는데 여기에 계주(계珠)가 장식되어 있는 것은 뒤에 보수한 것이다.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에는 긴 눈, 넓적한 코, 작은 입 등이 표현되었으나 8세기 경의 불상양식에서는 많이 퇴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굵고 짧은 목에는 삼도(三道)가 표시되고 있고 어깨는 거의 수평을 이루어 당당한 느낌을 주며 어깨선은 둥글고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풍만한 가슴과 양감이 풍부한 팔 다리 등으로 힘있고 볼륨있는 체구를 보여주고 있으나 목의 삼도 표현 등 세부수법은 얼굴과 마찬가지로 형식화되었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뚜렷하지만 간략하게 표현된 주름선이 몸에 밀착되어 있다.
오른쪽 수인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왼손은 무릎에 대었는데 양손이 두텁고 비만하다.

보수하여 세워둔 광배는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인데 내면에 2조선(條線)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구별하고 있다.
두광안에는 8판연화문(八瓣蓮花文)이 조각되었으며 외연부는 하염문(火焰文)과 구름무늬가 새겨졌는데 정상부에 화불(化佛) 1구가 조식되었고 중앙의 양쪽에 공양비천상(供養飛天像)이 새겨져 있다.
광배에 이러한 비천상이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예로서 전라남도 대흥사(大興寺) 북미륵암마애불(北彌勒庵磨崖佛)의 광배와 동일한 형식에 속한다.

대좌(臺座)는 8각연화대좌로 상대(上臺)는 반구형(半球形)인데 소박한 단판의 앙연(仰連)이 삼중(三重)으로 조각되어 있고 중대(中臺)는 꽤 높은 편으로 팔각인데, 각 모서리마다 우주(隅柱)가 표현되어 있으며 각 면마다 아름다운 비천(飛天)이나 보살상(菩薩像)과 팔부중(八部衆)등이 조각되어 있다.
하대(下臺)는 복련(覆蓮)의 연화문이 보일뿐 아랫부분은 묻혀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 중기의 불상양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세부에서는 그러한 이상적인 면이 사라지고 형식화되어가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말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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