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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당 - 국사당(國祀堂)이라는 규모가 큰 사당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134-1번지

우리 지역 지산리 서리마을 뒷산 정상에는 국사당이라는 규모가 큰 사당이 있다. 국사당이란 고려 태조가 서울에 도읍을 정하고 그 수호신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남산위에 두었던 것이다. 뒤에는 무당으로 되어 일반의 기도장으로 전락되었는데 민간에서 말하는 성황당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지역의 이 국사당의 발생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구전되어 오는 것을 종합해 보면 역시 원시 신앙의 구심점인 천신 신앙에서 발생한 것으로 하늘과 가가운 높은 산정에 국사를 모셔 놓고 지역 수호신으로 섬겨 왔고 또하 호랑이로부터의 환난을 막을수 있도록 석마를 모시기도 했는데 서리 국사당에는 석마를 모셔 호환을 막고자 했다.
국사당은 서낭당, 장군당, 영신당 등의 여러 신당보다는 한 단계 높은 상위의 신당으로 상당이란 칭호로도 불렸다. 이러한 원시 신앙이 뒤에 들어온 불교, 유교 등의 여러 종교와 타협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라 본다.
서리 국사당 역시 처음 위치한 산문 옆 여의주봉 산정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위치로 이전된 동기는 확실히 알 수 없고 구전으로 전해 오는 것을 보면 조선말엽 억불정책의 일환으로 사찰에 해를 끼치려는 관원이 말을 타고 국사당 옆을 지나려 하자 말이 꼼짝도 하지 않으므로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1991년까지 통도사에서 음 1월14일 제를 지냈으며 서리마을에도 음 3월3일과 9월9일에 제를 올리고 있지만 그 동안 제대로 보존을 하지 못해 낡고 허물어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면민들이 1995년 3월 우동신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사당 보존 위원회를 결성하여 후손들에게 조상들의 숨결과 발자취가 서려 있는 정신적 문화유산을 물려 주고자 국사당 재건에 나서 1995년 7월31일 준공을 보았다.

- 연혁 : 1985년 중건 -> 1935년 중수 -> 1995년 7월 재건
- 형태 :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16.5㎡)
- 소장품 : 10건 11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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