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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방진 - 옛 축성법과 규모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

by 넥스루비 2007. 8. 7.
제주 북제주군 구좌읍 하도리 3354

별방성에 대해 『신증동국흥지승람(新增東國興地勝覽) 제주목(濟州牧) 완방조(완방조)』에는 "별방성은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390자이고, 높이는 7자이다. 정덕(正德) 경오 즉 중종 5년(1510)에 장림 목사가 이 땅이 우도(牛島)로 왜선이 가까이 댈 수 있는 곳이라 하여 성(城)을 쌓고 김녕방호소(金寧防護所)를 이곳으로 옮기어 별방(別防)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였고, 김상헌(金尙憲)의 에는 "별방성은 동·서·남에 세 문이 있고, 성 안에는 우물이 있으나 맛이 짜다. 지명은 옛날에 하도의탄리라 하였다." 고 하였으며, 탐라지(耽羅誌) 제주목 방호소조에는 "북성에 대변청이 있고, 중앙에는 객사, 별창, 군기교가 있다."고 하였다박천형(朴天衡)의 서개(書개) 내용에는 "동쪽과 북쪽이 바다에 임하였고 성 안은 화북이나 조천에 비해 조금 넓으며 동·서·남에 세 문과 성 안에 두 우물이 있으나 포구의 공간이 몹시 좁과 뾰족 나온 돌 모서리가 창같이 날카로워 배를 정박할 수가 없다. 횃불을 비치해 경보하는 것이 좋을 듯하며 성을 설치하여 방어하는 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닌 듯하다."고 하였다. 병력은 조방장(助防將) 1인, 치총(雉摠) 4인, 성정군(城丁軍) 510명, 유직군(留直軍) 148명, 서기(書記) 15명, 소관 봉수대 2개소, 연대 3개소에 따른 별장 30인, 봉군 84명, 동후선(同候船) 1척이 있었다. 헌종 14년(1848)에 장인식(張寅植) 목사가 이를 중수하였다. 축성 때에 흉년이 심하여 부역 장정들은 굶주리면서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오기도 한다. 성은 지형적으로 남쪽은 높고 북쪽은 낮은 둘레 950m의 타원형 성곽이다. 동문과 서문 자리에는 양쪽으로 이미 민가가 들어섰고, 남문 자리에는 옹성(甕城) 일부가 그대로 남아 있다. 격대는 서문과 남문 사이에 2개, 남문과 동문 사이 1개가 남아 있고, 동문과 서문 사이 해안으로 4개가 있었으나 대부분 허물어져서 동쪽 끝 격대 1개가 남아 있다. 1996년에 남쪽 성곽 일부는 보수하였다. 그러나 도내 9진(鎭) 중에는 비교적 성곽이 많이 남아 있어 옛 축성법과 규모를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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