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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 유서깊은 신라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 본문

국내여행지/사찰

동화사 - 유서깊은 신라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08.07 00:09

동화사는 유서깊은 신라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이다. 이 곳은 대구광역시를 비롯하여 청도군, 성주군, 칠곡군, 달성구 등에 산재한 90여 개 사찰을 아우르는 대찰로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팔공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를 잡고 있다.

동화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다른 주장이 있다. <동화사 사적비(桐華寺 寺跡碑)>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 15년 (493) 극달(極達) 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가 흥덕왕 7년(832) 심지(心地) 대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 하여 동화사라 이름을 고쳤다고 전한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표 율사가 영심(永深) 대사에게 팔간자를 전하고 심지 대사가 받은 뒤 팔공산에 와서 이를 던졌다 한다. 이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지었으니 이곳이 바로 동화사 첨당(籤堂) 북쪽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상의 두 가지 창건설에 가운데 신라 흥덕왕 7년(832) 심지 대사가 중창한 시기를 사실상 창건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동화사는 창건 뒤 현재의 대가람으로 정비되기까지 여러 차례 중창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동화사는 신라말인 934년 영조(靈照) 선사, 고려 명종 20년(1190) 지눌 보조(普照) 국사, 고려 충렬왕 24년(1298) 홍진(弘眞) 국사에 의해 각각 중창, 중건되었다. 보조 국사는 호국불교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동화사 중창에 크게 공헌하여 동화사와 염불암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또 고려 말기 대표적인 고승인 홍진 국사는 동화사를 하안소(下安所)로 삼고 대규모 중창을 이루었다. 현재 해탈교 건너편에 국사를 기리는 부도가 남아있다. 조선 시대에는 선조 39년(1606) 유정(惟政) 사명대사, 숙종 3년(1677) 상숭(尙崇) 대사, 영조 8년(1732) 관허(冠虛), 운구(雲丘), 낙빈(洛濱), 청월(晴月) 대사 등이 각각 중창, 중건하였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등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조선조 영조 때 중창한 건물들이다. 지난 1992년 통일약사여래석조대불의 낙성을 전후해 동화사의 많은 당우들이 새롭게 지어졌다.

현재 동화사는 크게 대웅전 영역, 영산전 영역, 금당암 영역, 통일대전 영역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 영역은 동화사의 중심영역이라 할 수 있으며 대웅전을 비롯한 누각인 봉서루, 종무소로 쓰이는 강생원, 요사로 쓰이고 있는 심검당, 그 밖에 대웅전 서쪽으로 줄지어 선 고만고만한 전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영산전 영역은 대웅전을 오른쪽으로 비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볼 수 있는데 영산전, 천태각이 별도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금당암 영역은 계곡 하나를 건너 동쪽에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참선 수행하는 스님들이 정진하는 선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는 곳이다.

산내 암자로는 비로암, 부도암, 양진암, 내원암, 약수암, 염불암 등 6개가 있으며 부도암, 내원암, 양진암에는 비구니 선원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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