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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정북동토성 - 궁예가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도읍을 삼아...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청주시 상당구 정북동 351-1

토성의 길이는 675m(동벽 185, 서벽 165, 남벽 155, 북벽 170), 높이 3.5m, 폭 8-13m, 문지 4개소, 곡성 12개(네모서리, 동서남북 각2개) 남문터와 북문터는 좌우의 성벽이 어긋나게 만든 것이 특징이며, 동·서문과 함께 4개의 문을 가지고 있다. 성벽의 네 모서리에는 곡성< 曲城 > 모양을 이루고, 이 네 모서리와 문터 사이마다 곡성의 모양이 있어서 모두 12개의 치성< 雉城 >을 두고 있다. 이 토성은 문헌상의 기록이 없었으나, 근래에 발견된 조선 영조 20년(1744)에 승려 영후< 靈休 >가 기록한『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이 토성 관련 기록이 있다. 신라말 호족의 시기에 궁예< 弓裔 >가 양길< 梁吉 >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할 때에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도읍을 삼아 살았다. 후에후백제의 견훤이 상당산성을 빼앗고, 상당산성의 서문 바깥 까치내< 鵲江 >의 곁에 토성(정북동 토성으로 추정)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 賦稅 >를 거두어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해 들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세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들판의 토성은 백제< 百濟 >때를 지나오고, 암자의 금부처는 산한< 三韓 >때를 거쳤다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은 정북동 토성이 혹시 후감국의 쟁란기인 서기 9세기말에서 10세기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하였으나, 성내 민가 신축시에 돌화살촉과 돌창, 돌칼 등의 유물이 출토된 바 있고, 성의 위치와 주변여건이 비교적 성곽으로서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처음 축조연대는 더욱 소급될 가능성이 있음을 제시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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