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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 :: 괘불제, 100개의 합북 소리공양.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위치한 사찰

by 넥스루비 2007. 10. 5.
전남 해남 미황사(주지 금강 스님)의 ‘괘불제’(27일)는 올해로 8번째이다. 괘불제는 미황사가 소장한 조선후기의 괘불탱화(보물 1342호·괘도처럼 걸어놓고 볼 수 있게 만든 두루마리 불화)를 매년 한 번씩 일반인에게 공개하면서 갖는 문화행사이다. 해남 땅끝마을 주민 1000여명이 1년간 농사 지은 수확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만물공양(萬物供養)’을 비롯해 주민들이 100여 개의 북을 치는 ‘100개의 합북 소리공양’ 등이 명물이다. (061)533-3521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위치한 사찰로서 749년(경덕왕 8)에 의조(義照)가 창건하였다. 사적비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 8년 8월. 홀연히 돌배(石丹) 하나가 사자포구(獅子浦口, 지금의 땅끝)에 나타났는데 아름다운 음악(梵唄)을 연주하기에 주민들이 기이하게 여겨 가까이 가면 배가 멀어지고 돌아서 오면 가까이 다가오기를 며칠간 계속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목욕재계하고 제자 장운(長雲), 장선(長善) 그리고 촌장 간감(干甘)을 비롯한 100여 신도들과 더불어 배를 정중히 맞이했더니 비로소 배가 포구에 닿았고 배에는 화엄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과 불상, 탱화등이 가득 실려있었다. 노를 잡은 금의인(金衣人)이 싣고 온 검은 바위를 깨니 그 속에서 검은 송아지 한마리가 튀어나와 순식간에 누런 황소로 변하였다.

그날 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의인이 나타나서  "나는 인도국왕인데 금강산에 일만불(一萬佛)을 모실만 하다기에 불경과 불상을 싣고 왔더니 곳곳에 대소 사찰이 들어서 봉안할 곳이 마땅치 않아 돌아가는 길에 이곳 산세를 살펴보니 크기는 금강산보다 못하나 가히 경상(經傷)을 모실만 하기로 배를 멈추고 기다렸던 것이요. 여기가 부처님의 인연토(因緣土)가 되었으니 경전과 불상을 이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춘 곳에 절을 짓고 경상을 안치하면 국운과 불교가 같이 흥왕하리라"라고 일러주었다.

이튿날 금의인이 계시한 대로 황소등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한 번 크게 울고 들어눕는지라 그 자리에 절을 세워 통교사(通敎寺)라 이르고 다시 일어나 가다가 마지막 멈춘 곳에 지금의 미황사(美黃寺)를 세웠다 한다. 창건설화에 나오는 통교사는 없어진지 오래이고 산 밑 절 진입로 부근에 있는 우분(牛墳)마을은 설화와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소의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美'자를 취하고 금의인의 황홀한 빛을 상징하여 '黃'자를 택하여 '美黃寺'라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때 불탔으나 선조 31년(1598) 만선(晩善)이 중건했고 영조 30년(1754)에 대대적 중수불사가 이루어졌다.
이 절은 조선중기의 고승이던 고압(孤鴨), 설봉회정(雪峰懷淨, 1678~1738), 벽하대우(碧霞大愚, 1676~1763), 낭암시연(郎巖示演), 연담유일(連潭有一, 1720~1799) 등이 수도정진하며 강연을 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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