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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광사 - 약 백년 전 김목암스님께서 창건

by 넥스루비 2007. 8. 7.
해광사는 풍광이 매우 빼어난 기장 해변의 원앙대에 자리하고 있다. 기장은 천하의 진미로 알려진 돌김, 돌미역 등 해산물이 나는 바다로 유명한 고장으로 원앙대는 산과 바위와 바다가 조화롭게 이루어진 연화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원앙이란 이름은 금실이 좋은 선남선녀가 그 곳에서 죽음을 뛰어넘은 영원한 사랑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해왔기 때문이다.

해광사는 약 백년 전 김목암스님께서 창건하였다. 스님께서 출하시기 전 지금의 절 앞 밭에서 일을 끝마치고 목욕을 하던 중 표류해온 목불상을 발견하고 양팔로 안아 모셨더니 그 순간 온 몸에 신통력이 감응하여 큰 힘이 솟구쳐 오르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수 백년 전에 산사에 봉안되었던 내가 산사태를 만나 바다로 떠내려와 부심하다가 마침내 오늘 인연이 있는 곳에 표류해 와서 출현했다. 저쪽 산기슭 샘터옆 바위에 나를 모시도록 하라"고 하셨다. 가리키신 대로 목 불상을 샘터 옆 바위에 봉안했더니 소문이 퍼져 수많은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불자들의 원력으로 돌담을 쌓고 초가사간 법당을 지어 해중 목 불상을 봉안하였으며, 사명을 해불암이라 칭하고 창건주 김목암 거사는 스님이 되셨다.

그로부터 이십여년이 지나서 일제의 토지수탈 계략에 휘말리어 일본인에게 절 땅을 빼앗기고 목암 스님은 기장읍 석산리 뒷산에 새 암자를 짓고 목 불상을 이십여년동안 봉안하였다.  그 후 기장 용수곡 최춘삼거사가 목 불상을 모시고 있다가 타계하였으며, 일본인에게 빼앗겼던 해불암 땅은 약 육십 년 전에 대구의 거만장자가 매입해서 범어서 이일우 스님에게 사찰의 제반 운영권을 맡겼으며 뒤를 이어 김완성, 김일봉, 배도암 스님이 절을 지켜왔었다. 1941녕에 노해광 스님이 해불암 주지로 부임해 오면서 본격적인 사찰의 불사가 이루어 졌다.

해광 스님은 대구의 거만장자로부터 절 땅을 사들이고 기존의 소규모 초가사찰 전부를 헐어내고 법당, 삼성각, 병부전, 종각, 해변 용왕단, 요사채 3동 등을 신축하였고 미륵대불입상과 다보탑을 건립하였으며 삼존불봉안, 범종부보, 법당후편 조경석축, 사찰주변 사유지 확장 등을 사찰을 대규모화하여 전체 모습을 새롭게 한 중창 주로서 반세기에 걸쳐서 큰 불사를 계속했다. 목 불상을 해방 수년 후에 해광 스님이 최춘삼 거사로부터 해불암으로 다시 모셔와서 삼십여 년간 봉안하였으나 해수에 오랫동안 부심한 목 불상을 인양즉시 특수 보존처리를 하지 않아 나무의 빠른 부식이 진행되어, 불상의 존엄성이 크게 훼손되었으므로 더 모실수가 없었다.

1974년 목 불상을 법당 뒤 언덕에 정중히 은장하고 사명도 새롭게 해광사로 바꾸었다. "해(海)"는 만류귀해 하듯 불법이 크고, 넓고, 깊어 구경만법귀일함을 바다에 비유하여 법해라 하는데 이를 뜻하고 "광(光)"은 바다의 등대광이 항해하는 배를 인도하듯 중생들이 불법의 배인 반야용선을 타고 깨달음의 피안으로 건너가도록 밝혀주는 등댓불 역할을 뜻하므로 해광사 도량에서 법해불광이 온 누리를 비추기를 발원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승용차]
● 해운대 - 송정 - 용궁사(수산과학관) - 해광사
해운대에서 20분 정도 소요

[대중교통]
● 시내버스
'동래지하철역 건너편 : 188,183좌석버스이용
'해운대역앞/송정 : 181버스 이용
'동부시외버스터미널 : 기장행버스(동부여객)승차, 기장수협앞 하차, 181버스 이용

● 울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행
->동부시외버스터미널 하차 -> 기장행버스(동부여객)승차 -> 기장수협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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