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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릉운탑비 - 당시의 사회(社會) 및 문자(文字)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 1-1

고려< 高麗 > 태조< 太祖 > 24년(941)에 건립< 建立 >된 이 석비< 石碑 >는 자적선사< 慈寂禪師 >의 부도탑비< 浮屠塔碑 >이다. 대사< 大師 >의 속성< 俗姓 >은 김씨< 金氏 >이고 법명< 法名 >은 홍준< 洪俊 >이다. 대사는 신라< 新羅 > 헌강왕< 憲康王 > 8년(882)에 태어나서 효공왕< 孝恭王 > 3년(899)에 수계< 受戒 >하였으며, 고려 태조< 太祖 > 22년(939)에 입적< 入寂 >하였다. 태조는 대사에게 자적선사< 慈寂禪師 >라 시호< 諡號 >를 내렸으며, 부도탑< 浮屠塔 >은 릉운< 凌雲 >이라 이름하였다. 탑비< 塔碑 >는 귀부< 龜跌 > 위에 비좌< 碑座 >를 마련하여 비신< 碑身 >을 세우고, 이수< 이首 >를 얹어 놓은 통일신라< 統一新羅 > 이래의 전형적< 典型的 >인 일반형 석비< 石碑 >이다. 이 석비에는 고려 최초< 最初 >의 이두문자< 吏讀文字 >가 새겨져 있다. 경주< 慶州 > 남산< 南山 > 신성비< 新城碑 >와 일본< 日本 > 쇼소인< 正倉院 > 소장< 所藏 >의 『신라장적< 新羅帳籍 >』이 지방< 地方 > 호구조사< 戶口調査 >에 불과한 데 비하여 이 비명< 悲鳴 >은 신라시대의 이두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양성을 구비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발전< 發展 >된 체계를 갖춘 최초의 본격적 문서라는 점에서 당시의 사회< 社會 > 및 문자< 文字 > 연구< 硏究 >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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