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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산성 - 백제의병이 최후까지 충혈을 뿌린 유적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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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산성 - 백제의병이 최후까지 충혈을 뿌린 유적지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산65-3

변산반도 서쪽 개암사 뒤에는 커다란 기암봉이 하나 솟아 절을 지키고 있는데 이 바위를 일러 우금암(禹金岩)이라고 하며, 이 우금암 양쪽으로 쌓여 있는 길이 3,960m의 산성이 우금산성이다.

전라북도 부안군(扶安郡) 상서면(上西面) 감교리(甘橋里)에 있는 삼국시대 석축산성으로. 이 산성은 부안읍에서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줄포행 도로 서편의 개암사(開岩寺) 뒷산을 감고 있는 성벽을 약간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섞어 쌓은 산성이다. 남쪽으로 통한 계곡수구(溪谷水口)에 남문을 설치하고, 양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장되었고, 서남쪽으로는 울금바위 북단에 연결된다. 울금바위에서는 다시 동으로 꺾여 수구에 이르는데, 수구 옆에는 험준한 절벽 위에 장대(將臺)가 따로 설치되었다.

남변(南邊)의 길이는 수구에서 동측선이 563m, 울금바위까지의 서측선은 675m로서 총1,238m에 이르며, 동변(東邊)은 1,010m, 북변(北邊)은 830m, 서변(西邊)은 838m로서, 전체의 평면은 북변이 좁고 남변이 넓은 제형을 이루는데 주위는 총길이 3,960m에 이른다.
본래 위금산성(位金山城)이라는 기록이 이규보(李奎報)의 시에 보이는데 이 시에 의하면 신라의 장군 위금이 성을 쌓고 적을 막았는데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문헌비고》에는 우진(禹陳)이라는 고성은 삼한시대 우(禹)·진(陳) 두 장군이 성을 쌓고 주둔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산성은 백제 멸망 후 일본에 질자(質子)로 가 있던 왕자 부여풍(扶余豊)을 복신과 도침이 이곳에 모시고 마지막 2년간 항거하여 최후 항전을 벌렸던 곳이다.

근세에는 김유신 장군의 후손을 자처하는 인사에 의해서 소정방(蘇定方)과 김유신이 만났다는 뜻으로 위금암(位金岩)이 우금암이 되고, 소내사(蘇來寺)가 내소사(來蘇寺)로 바뀌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곳은 또한 백제의병이 최후까지 충혈을 뿌린 유적지이다.

우금산성은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데 개암사 대웅전 오른쪽에 있는 당우 뒤편의 길로 20분쯤 오르면 우금산성, 혹은 주류산성이라고 부르는 산성 위에 오를 수 있다. 그리고 바위 아래에는 원효대사가 수도했다는 커다란 바위굴인 원효굴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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