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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재 - 형양공(滎陽公) 정습명(鄭襲明)의 묘단하(墓壇下) 재숙지소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포항시 남구 대송면 남성1∼2리 465

남성재<南成齋>는 고려<高麗> 의종<毅宗>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추밀원지진사<樞密院知秦事>를 지낸 영일 정씨<迎日 鄭氏>의 시조<始祖>인 형양공<滎陽公> 정습명<鄭襲明>(?∼1151)의 묘단하<墓壇下> 재숙지소<齋宿之所>이다. 시조인 묘소<墓所>가 실전<失傳>된 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뒤 조선<朝鮮> 경종<景宗> 임인년<壬寅年>(1722)에 읍성의 남쪽 구석에 후손들이 처음으로 묘단<墓壇>을 쌓고 제사<祭祀>를 올린 바 있으나, 영조<英祖> 임술년<壬戌年>(1742) 읍<邑>을 동쪽 10리쯤 떨어진 곳으로 옮겨가게 됨에 읍성내<邑城內> 현 위치에 묘단<墓壇>을 새로이 축조하고 석상<石像>을 세웠고, 신미년<辛未年>(1751) 묘단<墓壇> 위에 비<碑>를 세웠다. 이듬해(1752)에 재사<齋舍>를 건축한 바 있으나 지대가 낮고 지반이 약하여 건물이 오래 부지를 못하고 퇴락하여서 1784년부터 1785년까지 공사를 벌려서 단소<壇所> 아래 서남쪽의 경사가 완만하고 지대가 높은 곳에 재사<齋舍>를 옮겨 지었는데 도합 19칸 규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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