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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장 - 사옹원(司饔院)에서 사기를 제작하던 장인(匠人)들을 일컫는 말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북

사기<沙器>란 도자기를 구워내는 온도에 따라 토기<土器>, 도기<陶器>, 석기<石器>, 자기<瓷器>로 나누어지며 백토 등이 혼합되어 높은 온도에서 구워진 것을 말하고, 사기장<沙器匠>은 사옹원<司饔院>에서 사기를 제작하던 장인<匠人>들을 일컫는 말이며 문화재에서는 도자 공예제품에 따라 제와장<製瓦匠>, 옹기장<饔器匠>, 도기장<陶器匠>, 사기장<沙器匠>으로 분류할 수 있다. 사기장<沙器匠> 기능보유자인 김정옥<金正玉>씨는 그의 8대조인 김영만<金榮萬>씨가 충청북도 청원군 성흥리<淸原郡 城興里>에서 경상북도 문경군 관음리<聞慶郡 觀音里>로 옮겨와 서당훈장으로 있으면서 터전을 마련하였고 7대조인 김경정<金就廷>씨로부터 사기장으로 출발하기 시작하여 200여 년간에 걸쳐 사기장가계<沙器匠家系>를 형성하였던 것이다. 김정옥은 제7대조로부터 이어내려 온 전통적인 사기 제조기술을 계승한 사기장인 선친 김교수<金敎壽>의 셋째아들이다. 그는 18세부터 부친 밑에서 사기제작에 종사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곳 관음리 중점<中店>에는 마을 공동 사기가마터가 있었던 사기점이 있다. 중점에 현존하는 사기가마는 현재 다섯칸이 남아 있으나 원래는 여섯칸의 칸가마였다고 한다. 가마의 연대는 약 150년 정도로 언덕을 오르는 등요<登窯>의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망송이로 가마를 쌓아 올린 망송이 가마이다. 이러한 망송이가마는 소백산 줄기를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던 독특한 가마시설이다. 1883년에 관요인 분원의 가마가 민요로 바뀌고, 분원에서 일하였던 도공들이 뿔뿔히 흩어지면서 문경, 괴산, 단양일대로 분산되어 갔는데 이 일대의 소백산맥은 풍부한 연료와 도자기의 원료인 사토<沙土>가 풍부히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정옥씨는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물레질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흙과 친숙해 흙을 온몸에 묻히고 살기 시작한 것은 열여덟살 때부터였다. 그는 문경 관음리 사기점 부근에 매장되어 있는 사토를 채굴하여 전통적인 수비과정을 거쳐 순박한 그릇들을 생산해 내고 있다. 작업장에서 수비된 사토를 꼬박작업을 거쳐 그릇으로 빚는 물레작업을 한다. 성형한 그릇들을 가마에 넣고 초벌구이와 시유한 후 다시 굽는 재벌구이를 거쳐 그릇을 구워낸다. 그가 사용하는 물레는 발물레로써 작업장의 움속에 마련된 전통적인 나무로 만든 것으로 시계방향으로 회전시키는데 이러한 물레 돌리는 방법이 한국 도자기 장인들의 기술이다. 만들어진 작품은 19세기후반부터 20세기의 막사기로써 코발트 안료로 간략한 초문<草紋>, 초화문<草花紋>을 그린 사발, 술병, 항아리, 요강 등의 청화백자들과 막사발 등을 주로 만들고 있다. 김정옥씨가 사기를 굽는 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84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입상하고 나서 부터였다. 그 후 1987년,88년 전승공예대전에서 입선과 특별상을 수상해 명실공히 사기장<沙器匠>으로서 널리 인정을 받았다. 옛부터 도자기를 굽는 마을, 문경 관음리 산골마을은 조선시대 옛 가마터가 30여 군데 조사되기도 한 지방 사기제작의 중요한 곳이었다. 전통적인 망숭이 가마와 옛 나무로 만든 발물레, 주변의 사토를 사용하여 전통의 옛그릇들을 만들고 있는 사기장 김정옥씨는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정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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