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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길신도비 - 국왕은 현재의 묘앞에 높이 4.2m의 신도비를 세우도록 명령 본문

문화ㆍ행사/문화재

최명길신도비 - 국왕은 현재의 묘앞에 높이 4.2m의 신도비를 세우도록 명령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충북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 253-3

지천< 遲川 > 최명길< 崔鳴吉 >(1586∼1647)은 영흥부사< 永興府使 > 최기남< 崔起南 >의 아들로 자< 字 >는 자겸< 子謙 >, 호< 號 >는 지천이다. 선조< 宣祖 > 38년(1605)에 문과< 文科 >에 급제한 후 승문원< 承文院 >을 거쳐 예문관< 藝文館 > 전적< 典籍 >을 역임하였다. 그러던중 광해군< 光海君 > 6년(1614) 광해군< 光海君 >의 폐모사건< 廢母事件 >에 관련되어 관직< 官職 >에서 파면되었다. 그후 인조< 仁祖 >를 추대하는 인조반정< 仁祖反正 >이 일어나자 여기에 가담하였다. 청< 淸 >나라에 대한 최명길< 崔鳴吉 >의 외교정책< 外交政策 >은 아주 현실적인 것이었다. 즉 정묘호란< 丁卯胡亂 >(1627)때에는 국왕< 國王 > 인조< 仁祖 >를 강화도< 江華島 >로 호종< 扈從 >하는 한편 청나라와의 강화< 講和 >를 주장하였다. 병자호란< 丙子胡亂 >때에도 선생의 주장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이때는 조선왕조< 朝鮮王朝 >가 처한 형세가 청나라와의 평화관계< 平和關係 >를 모색해야만 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선생은 홀로 청진< 淸陳 >에 들어가 청나라와의 화의교섭을 성공시켰다.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국왕은 현재의 묘앞에 높이 4.2m의 신도비< 神道碑 >를 세우도록 명령하였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신도비의 비문은 풍화< 風化 >로 거의 마멸되어 1980년 비의 보호를 위해 비각< 碑閣 >을 신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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