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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암신도비 - 신중암(1522∼1604)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북 청원군 낭성면 관정리 430-1

이 비는 조선< 朝鮮 > 선조< 宣祖 >때의 문신< 文臣 >이었던 신중암(1522∼1604)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선생은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계모와 동생을 성< 誠 >과 효< 孝 >로써 극진히 받들어 그 효행< 孝行 >이 국중< 國中 >의 귀감< 龜鑑 >이었다. 벼슬길에 올라 주부< 主簿 >, 감찰직< 監察職 >에 있을 때는 군민< 郡民 >을 교화< 敎化 >로 인도하였고, 임진왜란< 壬辰倭亂 >때는 군량미< 軍糧米 >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은 것을 알고 자가식량< 自家食糧 >으로 군량미를 조달하는 등 국난대처에 노력을 하여 이에 조정< 朝廷 >에서는 첨지중추부사< 僉知中樞府使 >를 제수< 除授 >하였다. 선생이 팔순< 八旬 >에 이르니 조정에서는 다시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嘉善大夫同知中樞府使 >의 벼슬을 내리고 이항복< 李恒福 >, 이덕형< 李德馨 >, 이수광< 李수光 >, 한석봉< 韓石峰 > 등의 헌수< 獻壽 >와 하장< 賀狀 > 친필집< 親筆集 > 경수도< 慶壽圖 >를 보내 이것을 지금까지 가보< 家寶 >로 전해오고 있다. 선생은 뒤에 좌찬성< 左贊成 >에 추증< 追贈 >되었다. 이 비는 광해군< 光海君 > 원년< 元年 >(1609) 심희수< 沈喜壽 >가 찬< 撰 >하고 이산뢰< 李山뇌 >가 글씨를 써 동왕 11년(1619)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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