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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선생생가지 - 이동영선생생가지 (李東寧先生生家址)

by 넥스루비 2007. 8. 7.
충남 천안시 목천면 동리 79-2

이 집은 독립운동가< 獨立運動家 > 이동녕 선생의 출생지< 出生地 >이다. 건물의 전체 평면< 平面 >은 ㅁ자형< 字形 >의 안채와 조금 떨어져 있는 일자형< 一字形 >의 대문간채가 어울려 ㄷ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는 각주< 角柱 >를 사용한 납도리의 5량가구< 五樑架構 > 홑처마 팔작와가< 瓦家 >로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칸씩의 방이 있는데, 안채의 동서< 東西 >로 3칸씩을 꺾어 달아내어 방과 부엌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향< 西向 >하여 놓인 대문간채는 3량가구< 三樑架構 > 맞배집 5칸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를 깔았고 양쪽으로 한칸씩의 방을 두었는데, 안채에서 보아 북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대문이 있다. 선생은 을사조약< 乙巳條約 >이 체결되자 만주< 滿洲 > 용정촌< 龍井村 >으로 망명하였고, 1907년 귀국하여 안창호< 安昌浩 >, 김구< 金九 > 선생 등과 비밀결사대< 秘密決死隊 >인 신민회< 新民會 >를 조직하였었다. 1910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가 이시영< 李始榮 >, 이강영< 李康榮 >과 신흥무관학교< 新興武官學校 >를 설립하였다. 1919년에는 상해임시정부< 上海臨時政府 >를 수립, 의정원< 議政院 > 의장< 議長 >이 되었다가 후에 국무총리< 國務總理 > 국무위원< 國務委員 > 주석< 主席 >을 겸임하였다. 1928년 한국독립당< 韓國獨立黨 >을 만들어 이사장< 理事長 >이 되었으나 1940년 중국의 사천성< 四川省 >에서 병사< 病死 >하였고, 묘소< 墓所 >는 서울의 효창공원< 孝昌公園 >에 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大韓民國建國功勞勳章 > 복장< 複章 >이 추서< 追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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