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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 문화제 - 우암 송시열선생의 정신과 사상, 학문 예술등을 계승하는 문화제

by 넥스루비 2019. 10. 17.

10.26(토) ~ 10.27(일)

우암 문화제의 추진배경은 다음과 같다. 남간사 유회는 이 고장에서 가장 위대한 우암 송시열선생의 정신과 사상, 학문 예술등에 대하여 전시민에게 이해시키고 널리 홍보함은 물론 추모하는 사업등 우리고유의 전통문화를 부각 시키는데 있다. 

우암 문화제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남간정사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후학들을 강학하던 곳으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우암은 충북 옥천 구룡촌에서 탄생하여 송촌, 성전리, 충북 화양동 등지에서 주거하였다. 특히 대전근교에서 주로 거주하면서 비래동에서 서재를 세워 비래암이라 하고 흥농동에 서재를 세워 능인암이라 하였는데, 이는 모두 초년의 강학장소였다.


이 능인암 아래에 서당을 건립한 것이 곧 남간정사이다. 이 명칭은 주부자의 운곡 남간에 의하였으니 이는 주자를 사모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으며 곧 만년의 강학장소였다.


조선시대의 정사라고 하는 것은 성균관, 향교, 서원과 함께 일종의 학교로써 개인이 건립한 사숙에 속한다. 그러나 간혹 별채에 ‘정사’라는 편액을 븥여두는 경우도 있다. 정사는 원래 불교에서 비롯되었다. 인도 불교에서 최초의 사원은 마가다의 왕사성밖에 세워진 죽림정사였다. 마가다의 국왕 빔비사라는 부처님이 고타마로 불려지는 수행자 시절부터 믿고 따르는 사이였다. 


고타마가 도를 이루어 부처가 된 것도 바로 마가다 국에서였다. 부처님의 성도후 얼마되지 아니하여 많은 수행자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왕사성으로 들어가 공양을 받았다. 


이때 승려들은 나무 밑이나 자연동굴에 기거하면서 수도를 하고 있었는데 이를 ‘비하라’라고 한다. 비하라라고 하면 동굴과 같은 수행자의 거처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이 가차할 집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들이 거처할 집은 너무 멀거나 가깝지 않은 곳이어야 했다.


다니기에 편리하고 가고싶은 사람은 찾아가기 슆고 낮이나 밤이나 고요하여 세속을 떠나 조용히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장소가 좋은 곳이었다. 비로서 사원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비하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비하라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 고유의 견축형태인 정사로 번역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정사는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있었던 건축의 한 형태였다. 중국 후한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후한서 당고열전에 보면 유숙이라는 사람이 속세와 멀리있는 곳에 정사를 세워 거쳐하면서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고 또한 같은 후한서 유림열전에 포함이라는 사람도 동해에 거주하면서 정사를 세워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다.

우암 문화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축제의 유래 및 특징
- 우암 송시열 선생의 사우인 南澗詞를 성역화하고 선생의 학문과 도덕을 추모·기념하기 위하여 1995년부터 개최
- 행사의 특성상 유교적 전통과 연관된 행사를 개최


▶ 지역특성
- 대전의 관문인 대전역이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대전 상권의 중심지역
- 유적 및 지역 명소:남간정사, 세천유원지, 만인산휴양림, 대전역, 중동약재거리 등
- 지역 특산물:산내 포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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