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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묘 - 정림동 단묘는 신도안에 시설물이 그대로 보존

여행정보 넥스루비 2007. 8. 7. 00:09


대전 서구 정림동 52번지

단묘(檀 廟)는 가수원다리가 있는 호남선 철교전에 갑천을 따라 괴곡동으로 들어가는 길을 들어서 원정림이란 곳에 위치한다. 마을 안쪽 매봉산 기슭에 자리잡은 단묘(檀廟) 본래 신도안(논산군 두마면 남선리)에 있었으나, 620사업이란 이름의 군시설 이전으로 1984년 정림동으로 옮겨 졌다. 당시 철거를 완강히 거부하여 육군본부에서는 남선리에 있던 시설문 일체를 그대로 옮겨 주었다. 따라서 정림동 단묘는 신도안에 있던 유사시설 가운데 시설물이 그대로 보존 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다.
신도안에서의 단군전은 계룡산에서 수도하던 남운훈(南芸薰)이란 여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남씨의 꿈에 나타난 단군(檀君)의 계시로 1958년에 단군전을 짓고 단군그림인 천진(天眞)을 모셨다. 천진은 남여사가 꿈에 보았다는 형상을 당시 계룡산 신원사주지 배진구(裵鎭求)스님이 그린 것으로 대종교의 천진과 같다.
이후 한학자인 정향 조병호(靜香 趙炳鎬,84세)가 단묘원장을 맡아 매년 음력 3월 15일의 어천절(御天節)과 10월 3일의 개천절(開天節)에 유교식으로 각각 어천제(御天祭)와 개천제 (開天祭)를 올리고 있다. 현재 단묘와 시설 일체는 대전대학교에 기증되었다.
단묘는 단군의 영정인 천진을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먼저 홍살문 뒤로 만덕문 (萬德門)이란 현판을 건 삼문이 있고, 그 안에 단정(檀井)이란 우물과 묘정비(廟庭碑)가 있다. '조선시조신성단제묘정비(朝鮮始祖神聖檀帝廟庭碑)' 란 비는 조병호가 짓고 써서 1981년에 세운 것이다. 이어 다시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전면으로 단묘가 보인다. 단묘는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전열은 퇴간을 두고 맞배지붕을 한 전형적인 사당건축 형태이다. 좌우의 담장에는 각각 살림집과 외부로 통하는 쪽문이 나있다.
단묘 건물 뒤로는 돌로 만든 삼신상(三神像)이 봉안되어 있다. 삼신상은 1988년 조씨의 꿈에 환인(桓因),환웅(桓雄),환검(桓儉)이 나타난 다음날 부여의 한 민가에서 10여년전 보령 성주에서 옮겨온 것을 다시 가져온 것이다.
살림과 강당으로 사용하는 서너채의 건물들이 단묘 왼편에 자리잡고 있다. 먼저 서재로 사용하는 정림장(靜林莊)은 신도안 당시의 건물로 전면 7칸 측면 3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하 였다. 왼쪽 옆면 3칸과 앞면 6칸은 ㄴ자형의 마루로 이어 졌으며, 오른쪽 앞면 1칸 통칸은 부엌으로 사용한다. 마루 뒤로는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로 방을 드렸다.
일파(日波)란 현판이 걸린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도 신도안에서 옮긴 것으로 현재 창고로 사용한다. 관선재(觀善齋)는 1984년 현 장소에서 새로 지은 건물로 전면 5칸 측면 3칸 규모에 팔작지붕 구조이다. 현재 강당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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