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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 1692년(숙종18) 탄방동의 도산 (道山) 기슭에 세워졌다

by 넥스루비 2007. 8. 7.
대전 서구 탄방동 220-1 번지

도산서원 (道山書院) 은 만회 권득기 (晩悔 權得己 : 1570-1622)와 그의 아들인 탄옹 권시 (炭翁 權諡: 1604-1672) 두 분의 학문과 학덕을 기리고, 이들 부자를 제사지내며 강학하는 곳으로 삼고자 1692년(숙종18) 탄방동의 도산 (道山) 기슭에 세워졌다.
본래 탄방동은 탄옹 권시선생이 후학들을 위해 세운 강학소가 있었던 곳이다. 명재 윤증 (明齋 尹拯)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이 이 서원에서 배출되었다. 1868년(고종5) 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전국의 47개 사액서원만 남기고 1871년 도산서원도 철폐되었다. 그러나 서원이 철폐된 후 당시 충청감사가 보낸 편지에서 도산서원은 훼철 대상에서 빠졌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1921년 서원 자리에 단소 (壇所) 를 세우고 봄가을로 제향을 지냈다. 1968년에 사당인 함덕사(涵德祠)를 세웠고, 1973년에는 옛 서원이 자리했던 동편 언덕에 안동권씨 문중이 중심이 되어 도산서원을 다시 세웠다.배향인물은 광해군때 예조좌랑 (禮曹佐郞) 을 지낸 만회 권득기와 현종때 한성부우윤 (漢城府右尹) 을 지낸 탄옹 권시 두분 선생이다. 서원에서는 봄 가을로 유림 (儒林) 들이 모여 제향을 올리는데, 각각 음력 3월과 9월의 두 번째 정일 (丁日) 이다.
남선산 (南仙山) 은 옛날 신선이 놀다 간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남산 (南山), 도산(道山)이라고도 하였다. 과거 산에 참나무가 많고 숯을 굽는 숯방이 있었던 까닭으로 '숯뱅이(탄방동)' 라고도 불렸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선현의 위패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한편 그 선현의 학문을 따르는 후학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하기 위하여 만든 일종의 글방이다. 이러한 건립목적을 갖기에 서원은 크게 두 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그 하나는 선현에 대한 제향 (祭享) 공간이며, 다른 하나는 학문을 연마하는 강학 (講學) 공간이다. 대개 두 공간은 담장으로 구분된다. 만회와 탄옹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함덕사 (涵德祠)란 사당이 있는 제향공간과 후학들이 학문을 닦는 명교당 (明敎堂)이란 강당 및 동 ·서 양재가 있는 강학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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