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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동 엿장수 놀이 - 조선 중엽 김씨의 엿도가 경영으로부터 유래

by 넥스루비 2007. 8. 7.

대전 중구

문창동 엿장수 놀이는 조선 중엽 서정말(西町) 남쪽에 살던 황씨 북쪽에 살던 김씨의 엿도가 경영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들은 경쟁적 관계로 다툼이 자주 있었다.
그런 가운데 임진왜란이 일어나 황씨가 죽게 되었고, 이후 김씨가 죽은 황씨를 기려 매년 정월 보름달 거리제를 지내주었다.
그러면서 두 가문이 예전처럼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다. 아울러 이날은 줄다리기 등의 놀이가 향유되기도 하였다.
놀이의 구성을 소개하면 먼저 정월 초사흗날에 엿장수들은 제주를 선정한다. 제사일이 다가오면 양쪽집의 제주가 모여 거리제의 제반 집행에 대해 상의하고 준비를 한다. 놀이의 첫번째 단계는 길놀이이다. 정월 대보름날 일정한 시간에 유사인 마을 좌상이 징을 크게 3번 친다. 이 소리를 들은 다른 마을 좌상은 알았다는 응답으로 징을 3번 쳐서 화답한다. 그러면 두 마을의 엿장수들이 각기 기를 앞세우고 거리제장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제장에 나와 두 기를 마주 세운 뒤 기세배를 올린다.
이어 거리제를 올린다, 엿장수들은 사거리 중앙에 돗자리를 펴고 제상을 놓은 뒤 제물을 진설한다. 제의는 유고식 기제사형식으로 진행된다. 분향 강신을 하고 좌상이 초헌을 하고 삼배를 하는 수능로 진행된다. 소지는 제주가 올리는데 소망하는 바를 좌중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소리를 내어 축원한다. 보통 첫째 소지는 엿도가 덕대를 위해서 올리고, 둘째 소지는 두 마을의 좌상을 위해서 올린다. 셋째 소지는 엿장수들이 일년 동안 무병하고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올린다.
이렇게 세 장의 소지를 올린 다음 특별히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위해 올린다. 그리고 맨 나중에는 날의 대표와 국태민안을 위해 올린다. 거리제가 끝나면 헌식이라하여 제물을 제장 주변에 뿌린다. 그리고 제물을 나누어 먹는 음복이 행해진다.
제를 지낸 후, 줄다리기가 행해진다, 이 줄다리기에서 이기면 이긴 편의 엿은 일년 동안 잘 팔리고 진 편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그래서 두 마을은 상의 끝에 무승부를 약속하고 경기에 임한다.
양쪽 마을에서 만든 줄을 가지고 나와 제상이 있던 자리에 연결해 놓고 줄목에는 마을기를 꽂아 놓는다. 중앙에 있는 두 사람의 심판관이 동시에 징을 치면 경기가 시작된다. 좌상은 사령기로 지휘하고 군중은 함성을 지르며 풍물을 친다. 경기도중 잠시 쉬는 시간도 있다. 이때 두 편은 약속이나 하듯 「쾌지나 칭칭나네」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전의를 북돋운다. 다시 줄을 당기고 그러다가는 다시 쉬면서 노래를 부르고 이렇게 세번 반복한다. 그리고 세 번째에는 이긴 편이 아녀자들이 진 편에 대해 야유를 한다.
그러면 이때 진 편에서 기습적으로 줄을 당긴다. 이 불시의 기습에 이긴 편은 못이기는 척하고 줄을 놓아준다. 줄의 중앙이 애초에 시작해던 것과 동일한 장소에 놓이게 된다.
결국 무승부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렇게 경기가 끝나면 두 마을 사람들은 모두「쾌지나 칭칭나네」를 부르며 어우러져 무승부를 자축한다.
경기가 끝나면 뒤풀이가 이어진다. 좌상이 가위치기를 하며 앞장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따라나선다. 대열에서 엿타령이 나오면 사이사이에 가위치기를 하여 흥을 돋운다.
그러면 대열의 아무나가 익살을 떨면서 엿타령을 화답한다. 다시 가위치기로 전체가 하나가 되어 장내를 돌며 신나게 놀이를 전개한다. 이어 풍물패가 등장하여 신명을 한껏 일구어 놓는다. 그리고는 이들 풍물패가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을 이끌고 놀이판에서 퇴장하면 놀이가 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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