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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사대웅전 -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숙종7년(1681)에 중창한 것

by 넥스루비 2007. 8. 7.

경남 창원시 천선동 102

성주사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10년(835)에 무렴국사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숙종7년(1681)에 중창한 것으로 전한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의 목조와가(木造瓦家)로, 다포계 양식이다. 전면 공포(空胞)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조각 등은 조선후기 건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신라< 新羅 > 흥덕왕< 興德王 > 10년(835) 무염국사< 無染國師 >가 창건< 創建 >하였다고 전한다. 무염화상은 당시 왜구< 倭寇 >들이 침입하자 도력< 道力 >으로 이들을 물리치자 왕이 기뻐하여 왕사< 王師 >로 삼고, 이 절을 창건하도록 하였으며, 성인< 聖人 >이 상주< 常住 >하는 절이라하여 『성주사< 聖住寺 >』라 하였다 한다. 그후 임진왜란< 壬辰倭亂 >(1592)때 소실< 燒失 >되어 조선< 朝鮮 > 숙종< 肅宗 > 7년(1681) 중건< 重建 >하였는데, 중건시 곰이 목재< 木材 >를 운반하여 놓았으므로 '곰절< 熊神寺 >'이라고도 하였다 하며, 순조< 純祖 > 17년(1817)에 중수< 重修 >하였다. 대웅전은 다포계양식< 多包系樣式 >이면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전·후면에만 공포< 包 >를 배치하되 공포가 없는 측면에더 기둥 위에 창방< 昌枋 >과 평방< 平枋 >을 짜았으며, 공포의 배치도 간격을 다르게하여 모두 특이한 예가 된다. 전면공포는 내·외부< 內·外部 > 모두 화려하고 장식적인 조각을 하였고, 후면 내부는 간략한 교두형< 翹頭形 >으로 조각하였으며, 일부 단순한 부재< 部材 >들로 구조되어 조선< 朝鮮 > 후기< 後期 >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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