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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시장 :: 김해, 양산, 밀양, 창원 등 경상도 상인뿐만 아니라

by 넥스루비 2007. 2. 4.
- 장터: 구포시장
- Address: 부산 북구 구포동 589번지
구포시장은 구포1동 589번지에 소재하고 있는 재래시장이다. 1972년 무렵 『사단법인 구포시장번영회』를 발족하면서 만들어진 상설시장이다. A, B 2개 공구를 만들어, 생선을 취급하는 선어구와 곡물구로 나누었다. 1층 콘크리트 건물로 되어 있는 시장의 규모는 선어구가 231평, 곡물구가 186평 정도이다. 점포수는 100여개이나 재래시장의 사양화에 따라 1997년 3월 현재 영업을 하는 가게는 30개 정도이고, 나머지는 창고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설시장에 등록된 정회원의 수는 59명이다. 구포시장은 이러한 상설시장보다는 5일장의 명성이 더 높다. 매달 3일과 8일에 열리는 장날이 되면, 노점상이 늘어나면서 시장이 주변 지역으로 확대된다. 5일장은 일출에서 일몰까지 열린다. 상인의 규모는 계절에 따라 꽤 차이가 있으나, 평균 1,500 ∼ 2,000명 정도 규모이다.

구포시장에는 김해, 양산, 밀양, 창원 등 경상도 상인뿐만 아니라 경북, 전남지역 상인 등 전국의 상인이 모인다. 이용 주민의 수는 대략 10,000여명 정도이다. 주거래 품목은 농산물, 수산물, 해산물 등을 비롯하여 공산품, 일용품, 잡화 등이 중심이다. 현존하는 기록 가운데 구포장의 이름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1871년에 간행된 『영남읍지』로, 구포장은 3, 8일장으로 읍내장(2, 7일), 좌수영장(5, 10일), 부산장(4, 9일), 독지장(1, 6일)과 함께 5일장 체계를 이루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저작된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우리 나라의 유명한 포구로 낙동강 하구에서는 김해의 칠성포를 들고 있다. 그러나 그 후 낙동강 하류의 수로의 변화에 따라 구포-사상-하단을 연결하는 흐름이 낙동강의 본류를 이룸에 따라, 해상운수상 유리한 위치에 있던 구포가 점점 포구로서 발달하였다. 구포의 포구상업이 발달하게 된 것은 주변에 삼량창, 감동창 등 조창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운선(漕運船)의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숙박업이나 상업이 발달하였다.

구포는 낙동강 입구의 요지이며, 경부선 철도가 개통될 때까지 하단포와 함께 부산으로 수송되는 물산의 집산지였다. 낙동강 하구에 위치한 하단포는 해류의 변화가 심하여 물산 집산지로는 불편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구포가 보다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부산에서 내륙으로 수송할 화물은 먼저 육로로 구포에 이르고, 여기서 선편으로 삼량진, 수산진, 사문진, 왜관 등으로 보내지는 것이 보통이다. 구포에서 안동까지의 수로는 700리나 된다. 내려오는 선편에는 낙동강 유역의 여러 곳의 나락을 모아 싣고 구포까지 오면 나락은 정미소로 넘 겨졌다. 구포는 미곡의 생산지는 아니지만, 곡물의 집산지로서 정미소가 많이 생기고 정미업이 번창하였다.

구포는 포구상업의 발달로 인해 한말에는 많은 객주들이 모여 들어 구포는 상당히 번창하였다. 이러한 배경 아래 구포에서 민족계 지방은행인 구포은행이 1912년 6월 설립되었다. 구포은행이 설립되기 전에 구포저축주식회사라는 금융기관이 있었다. 이 회사는 예금 및 대금업, 어음할인업 등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장우석, 윤상은, 전석준 등 구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의 물산객주나 지주 등 70여명이 자본금 25,000원으로 1908년에 설립하였다. 이 회사는 우리나라 지방 금융기관의 선구이며, 구포은행의 전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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